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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골프 왕초보인 나는 아직 핸디 계산이 안되는 수준이다. 보통 골프 비기너들이 꿈꾸는 이상적 핸디는 ‘백돌이’다. 100타로 18홀을 정복(?)하는 수준을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백돌이가 되기에도 한참 멀었다. 그 정도 수준이면 골프 치는 사람들이 잘 붙여주질 않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골프공 찾으러 다니다 보면 시간만 낭비한다고 같이 나간 사람들이 눈치를 주고 흘겨보기 마련이다. 그런 설음과 압박을 이겨내며 그래도 끼워달라고 졸라서 겨우 골프장에 나가면 우선 기분은 좋다.
아름답지 않은 골프장이 어디 있는가? 그야말로 푸른 초장이 아니던가? 말리부 캐년, 부룩 사이드, 몬테벨로, 하딩과 같은 LA 주변의 골프장 몇 곳을 드나들면서 내가 속으로 익힌 교훈 하나가 “누가 벙커를 두려워하랴!”는 배짱이다.
골프장엔 벙커가 많다. 모래 구덩이를 말한다. 특히 공격 목표인 홀에 가까워질수록 그린 주변에는 수많은 벙커들이 있다.
물론 호수도 있고 개울도 있고 러프도 있지만 제일 두려운 장애물은 벙커다.
그렇지만 그린 주변에 벙커가 있다고 공략을 포기할 것인가? 그건 골프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3백 야드, 4백 야드 저 멀리 까마득한 곳에 홀 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린을 향하여 드라이버를 후려치는 것이다. 혹시 볼이 벙커에 빠지지 않을까 두렵다면 골프는 종쳐야 한다. 벙커에 들어가면 빼 내면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벙커는 많이 있다. 벙커 없는 골프코스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장애물 없는 인생살이가 어디 있겠는가?
미 프로농구 NBA 플레이오프가 지난 주말부터 시작되었다. LA를 대표하는 2개의 팀 가운데 레이커스는 물론이려니 해도 클리퍼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는 6년만이다.
레이커스의 ‘젊은 피’ 라몬 세션스나 클리퍼스의 신참내기 닉 영이 쏘아 올리는 3점 슛을 보라.
크리스 폴이나 코비 브라이언트의 3점 슛은 기성품같이 느껴지는데 세션스나 닉 영의 3점 슛은 신제품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플레이를 보면 마치 관중들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누가 3점 슛을 두려워하랴!”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의 가택연금에서의 탈출 사건은 지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영화 ‘빠삐용’의 차이나 버전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인권운동가로서 불법낙태 실태 등을 폭로하다 붙잡혀 자택에서 19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던 그는 감시요원 75명, 경찰차량 2대, 경찰견 3마리가 배치되어 24시간 감시하는 철통같은 감시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인터넷도, 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다. 벼락을 맞아 감시 카메라가 고장 난 틈을 이용해 책상 안쪽에 숨기고 있던 낡은 휴대전화로 바깥 지원자들과 통화되어 마침내 탈출을 시도한 것이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그는 개울과 강을 건너며 200번이나 넘어지면서 한 여성 인권운동가와 접선에 성공, 570 km를 차로 달려 북경에 도착, 미국 대사관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그의 신병처리 문제로 미중간의 관계가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천 씨는 미국 망명을 거부하고 중국에 남아 인권투쟁을 벌이겠다고 하니 양국의 관계가 더욱 난처해질 전망이다.
양국 관계는 정치적으로 풀어갈 일이지만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위해 불가능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없이 탈출을 시도하다 마침내 성공한 그는 분명 시각 장애인으로서 그런 신념을 안고 살아 왔을 것이다. “누가 어두움을 두려워하랴!”
우리는 쉽게 사는 일에 너무 빨리 길들여지고 있다. 쉽게 절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그리고 쉽게 타협하기 위해 원칙이나 진실 따위를 주저하지 않고 버려 버린다.
해병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 툭하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헝그리 정신’이 실종되고 있다. 난관의 터널이 다가서면 뚫고 지나가려는 용기보다 쉬운 길로 돌아가려는 약삭빠른 처세가 갈채를 받는다.
아마도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패배의 두려움, 가난의 두려움, 소외의 두려움, 불신의 두려움, 망각의 두려움 . . . .
그러나 누가 벙커를 두려워 하랴. 두려워하지 말고 멋진 백스윙과 팔로우스루를 통해 공을 때리는 것이다. 벙커를 의식하면 훅이나 슬라이스가 나서 볼은 더 깊은 러프에 빠질 수도 있다.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세상은 두려움 만성 증세에 빠져 있다. 교회들도 그렇게 오염되고 있는 것 같다. 덮어 놓고 안쓰고, 덮어 놓고 거절하고, 덮어놓고 걸어 잠그면 중간은 될 것이라고 안심한다.
그러나 교회는 두려움을 변화시켜 평안을 바꿔주는 곳이 아닌가? 세상이 살기 힘들어 불안해 졌다고 교회마저 덩달아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평화의 주님은 어디에 팔아먹었단 말인가?
헌금이 계속 줄고 있다며 교회 지도자들이 허둥대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모양새를 보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혹시 빗나갈까 염려하지 말고 주님의 손이 받쳐 줄 것이란 믿음을 갖고 3점 슈팅에 도전하자. 천광청에게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면 빛은 곧 찾아 들 것이란 교훈을 얻게 된다.
벙커를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의 공을 쏘아 올리자. 홀인원이나 이글과 같은 기적은 기대 할수 없다 해도 더블 보기나 트리플 보기의 경우에도 넉넉한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는 겸손한 사람들이야말로 정녕 알짜배기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겠는가?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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