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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서서평 선교사님, 한국에서 영양실조로 돌아가신 해가 1934년 6월이니 선교사님이 별세하신 후 20여년이 채 안되던 한국 전쟁 통에 저는 태어났습니다.
제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 그 캄캄했던 조선 땅에 선교사님 같은 분이 다녀가셨다는 사실을 금년 사순절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엘리자베스 쉐핑 . . . 한국 이름은 서서평, 그 선교사님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금년 사순절을 지나는 저에게 영적인 축복이었습니다.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이제사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선교사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저의 무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선교사님이 조선을 위해 어떻게 몸을 바쳐 선교하셨는지 모르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요.
‘서서평 선교사님 전상서’라고 감히 말씀 드림은 문서를 통해서나마 선교사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 그냥 이름을 불러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32살 처녀의 몸으로 어떻게 가난에 찌들어 살던 조선 땅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까? 간호 선교사가 되어 조선 땅에 간호부를 키워내기 시작하신 것은 얼마나 위대한 시작이었습니까? 가난한 고아들을 돌보다 못해 14명의 고아들을 자식으로 입양하신 일은 또 얼마나 위대한 희생이었습니까?
한국과 결혼했으니 오직 한국을 님으로 섬기겠다고 말한 선교사님, 태어나서 이름도 가져보지 못한 수많은 ‘큰 년’ ‘작은 년’ ‘이쁜이’ ‘돼지 할머니’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던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려 38명이나 되는 과부들에게 자립의 길도 열어주셨습니다.
보리밥, 된장국에 고무신 끌고 다니며 빈자와 병자의 어머니가 되셨던 선교사님, 엄동설한에 문둥병자 두 명이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선교사님은 집에 달려가 하나밖에 없는 담요를 가져다가 둘로 나누어 하나씩 덮어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선교비가 오면 우선 반은 교회에 헌금하고 나머지 돈으로 최저생활을 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한 갱생원을 지어 달라고 광주에서 서울의 조선 총독부까지 걸어서 도착하여 연좌농성을 벌인 선교사님은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정의의 용사였습니다.
돈이 없으면 쓰던 침대는 물론 음식, 책, 전도지, 옷, 수건 등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나누어 주며 살았습니다.
죽고 나면 시체를 해부해서 의학 연구용으로 사용하라고 자신의 몸을 내어 놓은 것은 또 얼마나 충격적인 결단이었습니까?
남기고 간 재산은 고작 돈 7전, 강냉이 가루 두 홉, 겨우 자신의 몸을 가릴 담요 반 장. . . 선교사님이야말로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돌보지 못한 탓에 결국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선교사님은 당시 동아일보 조차도 ‘재생한 예수’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세상 즐거움을 절제하는 절기입니다.
사람들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에 이르셨던 길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순절엔 특히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란 그 비아 돌로로사에 우리는 서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를 선택하심으로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 치욕을 내 것인 양 끌어안고 아픔을 느끼며 회개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비아 돌로로사엔 채찍에 맞아 흐르던 주님의 피, 가시 면류관에 찔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던 주님의 피는 보이지 않고 오직 기념품을 팔아 돈이나 벌겠다는 장사치들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가야 할 비아 돌로로사에도 예수님의 수난의 핏자국은 사라지고 번영과 기적과 물량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가난은 사라지고 풍요만 있습니다. 눈물은 사라지고 쾌락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헌신은 사라지고 권력만 소리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기 위해 비아 돌로로사를 거쳐 골고다에 이르신 주님처럼, 조선 땅에 구원의 길을 열어놓기 위해 핍박과 가난의 비아 돌로로사를 거쳐 영양실조란 골고다에 오르셨던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정녕 ‘조선의 성자’였습니다.
선교사님은 정녕 ‘한국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난 부활하신 주님은 즐거워하면서도 비아 돌로로사를 거쳐 골고다에 오르시는 주님은 외면하고 사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교의 불편한 진실을 선교사님은 알고 계시겠지요.
조선 땅에 청춘과 희망을 묻은 수많은 선교사들의 피와 눈물의 댓가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존재함을 쉽게 망각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선교사님이 한국에 도착한지 100년이 지난 금년에서야 비로소 ‘서서평’이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단 말입니까?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금년 사순절엔 우리 모두 회개의 눈물을 가슴에 담게 하소서.    
<크리스천뉴스위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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