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와 신앙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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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제자들교회>


물리학자 세 명이 모래알 쌓는 실험을 했습니다. 책상 위에 모래알 한 알씩을 계속 떨어뜨렸는데 계속 쌓이다가 모래알 한 알이 더 떨어지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무너지더라는 겁니다.
모래 한 알이 기존의 상태를 무너뜨리는 상태에서 나온 이론이 임계상태(臨界狀態, critical state)란 말입니다.
어떤 물질 또는 현상의 성질에 변화가 생기거나 그 성질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경계가 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물리학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 기체를 일정한 온도에서 압축시키면 액체가 되는데, 임계온도를 넘어서면 아무리 압축해도 액화되지 않습니다.
또, 이 때의 기체는 임계상태에 있다고 말합니다.  낙타가 싣고 갈 수 있는 무게가 200파운드라면 거기에다가 단추하나만 얹어도 그 낙타는 쓰러집니다.
단추 한 개의 무게가 평소에는 별 것 아니지만 임계상태에서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역할을 합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임계상태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괴적 임계상태(destructive critical state)입니다.
파괴적 임계상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제 기능을 발휘하며 도덕성과 윤리가 지켜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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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하나님 창조적 임계상태를 돌파하는 임계물질 역할을 해야 합니다.
끓는 물이 필요한 곳에서 물이 100도에 이르게 하고 얼음이 필요한 곳에서 물이 얼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천이 있는 곳에서 부숴진 곳을 보수하며 무너진 곳을 일으키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기독교를 팔아버리고 크리스천이 영혼을 팔아버리는 행태가 횡횡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신사도운동일 것입니다. 예배가 아닌 것이 예배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간의 욕망의 임재를 하나님의 임재로 착각하는 무서운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임계상태를 끊기 위한 수단으로 신사도운동의 부흥방식을 너나 할 것 없이 도입하고, 크리스천은 현실도피위한 수단으로 그러한 집회에 참석하여 빠져듭니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과 살기 어렵다 할지라도 모양과 용어만 기독교인 유사기독교를 도피처와 위안으로 삼는 것은 이교에 빠지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신사도운동 형태의 집회 타종교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특별히 힌두교의 ‘쿤달리니 각성’(Kundlalini Awakening) 때에 나타나는 현상과 거의 일치합니다. 따라서 신사도운동 집회 형태를 보고 기독교로 규정하거나 하나님의 임재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 태생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의 삶을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소유에 가치를 둔 인생입니다. 남보다 많은 물질 명예 권세를 소유하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삶의 양태가 기독교를 현세구복적인 모습으로 바꿔 놓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삶의 모습에 가치를 둔 인생입니다.
원하고 뜻하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며 현실의 어려움에 치우치지 않고 기독교인다운 삶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생이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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