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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몇 년 전 뉴욕 맨하탄 UN 본부 앞을 걷다가 옆에 있는 아들에게 말했다.
“야, 너 UN 사무총장이 한국인인거 알지?” 별로 놀라거나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다.
“UN 사무총장은 세계의 대통령이야!, 한국 사람인게 자랑스럽지 않니?” 관심 없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속으로 혼자 하는 말이 “싸가지 없는 자식, 애비가 흥분하면 좀 함께 기뻐해 주지. . . 여기서 난 놈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적이 있다.
1.5세나 2세들이 어찌 생각하거나 말거나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우리의 자랑이다.
그 뿐이랴! 금년엔 세계 은행(World Bank) 총재에 김용이란 분이 취임하지 않았는가?
개발도상국에 잘해야 된다고 타이르면서 돈을 꿔주는 세계은행은 186개 회원국을 갖고 있는 막강한 세계 기구다.
한국인이 그곳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도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30년 전만 해도 찌찔하게 가난했던 분단국가 대한민국 사람이 IMF와 더불어 3대 국제 기관인 UN과 월드 뱅크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참으로 보통일이 아니다.
2세들이 무관심하던 말던 상관할 필요 없다. 미국이란 나라에 이민 와서 쭉쭉 뻗어가는 우리 1세들을 보면 눈물겹도록 자랑스러워 질 때가 많다.
영어 못하는 창피함을 극복해가며 이 땅에서 다른 민족들과 겨루면서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온 과거가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우리 1세들의 ‘헝크리 정신’이 탄생시킨 기쁨이요, 영광이다.
사실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1세 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을지라도 그 헝그리 정신 부족으로 인생 날 새는 경우가 수두룩해지고 있다.
콜로라도 극장 총기 사건 때문에 우울한 지난주였지만 그래도 기쁜 소식 하나가 우리들에게 전달되었다.
연합감리교(UMC)에서 또 한명의 한인 감독이 탄생했다는 낭보였다. 주인공은 바로 조영진 목사님이다.
연합감리교는 미국 개신교 가운데 남 침례교 다음으로 큰 교단이다.
NCCUSA가 발행하는 금년 연감에 따르면 UMC의 교인수는 대략 8백만 명이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약 50명의 감독들이 선출되어 있다.
감독은 행정적으로는 물론이요 최고의 영적 지도자다. 연회가 개막될 때 감독은 흔히 지팡이를 들고 입장한다. 모세가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험한 골짜기를 마다하지 않고 지팡이를 들고 찾아나서는 영적인 지도자가 감독이다.
UN 사무총장이나 세계은행 총재에 한인이 선출되었다는 기쁜 소식 못지않게 또 한명의 한인감독 탄생은 연합감리교회는 물론이요 한인교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UMC의 한인 감독은 모두 3명이 되었다. 뉴욕의 박정찬 감독님, 그리고 시카고에 정희수 감독님이 있다.
김해종 감독님이 UMC 역사상 최초의 한인 감독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것은 한인 교계의 긍지요 자랑이었다.
그 분이 은퇴한 후 이제 한인 감독 3명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만큼 커지고 있는 UMC 내 한인 연합감리교회의 위상을 말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미국 내 모든 교단들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캐톨릭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교인 감소추세다.
UMC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고 교인이 사라진 후의 빈 예배당을 팔아서 푼돈을 챙기는 일에 재미를 붙이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팔아 넘긴 예배당이 마침내 이슬람의 모스크로 변하기도 하고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캬바레로 변하는 가슴 아픈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제 한인감독 3명을 가진 한인 연합감리교회들은 더욱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UMC란 교단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그리고 위축되는 교단에 영적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할 책임도 물려받았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사실 선배들이 일궈놓은 ‘좋은 교회’ 차고앉으려고 파송권자인 감독과 ‘눈도장’이나 찍는 것을 목회자의 사명이요 목적인양 처신하며 살아오는 목사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개체교회 살려보겠다는 열정보다는 전임자나 선배가 던져 주는 쉽고 편한 출세의 동아줄을 잡으려고 눈치 보는 목회자들은 전혀 없는가?
감독과 친해지는 길만이 만사형통의 길이라고 오해하면서 연합감리교회의 그 찬란한 파송 보장제에 업혀서 즐거워 해 온 목회자는 없는가? 금년 4년차 총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느껴졌던 UMC의 그 파송보장제도는 결국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새로운 한인감독의 탄생을 기뻐하며 동시에 이제 한인 연합감리교회는 소속된 거대 교단에 대한 의무와 책임도 함께 업고 가야 할 시점에 직면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기쁘다. 또 한명의 한인 감독 . . . 신학교 시절에 만났던 그 분은 늘 여리고 자상했다. 후배들에게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었다.
40여년이 지나 미국에서 이제 그분을 감독님으로 부르게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조영진 감독님, 축하드려요. 선배님이 있어 연합감리교회의 미래는 아름답고 밝아 보입니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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