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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LA 뮤직 센터에는 4개의 커다란 극장이 있다. LA 필하모닉의 본거지로 알려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연주 공연을 주로 하는 마크 테이퍼 포럼, 무대가 커서 대형 연극에 사용되는 아만순 시어터가 있다. 여기에 하나 더 2003년에 개관된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까지 모두 4개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LA 다운타운의 명물로 각광받고 있다.
프랭크 게리란 세계적 건축가가 디자인한 은빛 찬란한 음악당의 외관이 우선 걸작이다.
스텐레스 스틸의 중후함과 모던함이 예술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총공사비 2억7천4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이 음악당은 월트 디즈니의 부인 릴리안 디즈니가 기부한 5천만 달러가 종자돈이 되어 건축된 것이다.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는 고전음악을 즐겨듣는 척 몇 번 티켓을 사들고 들어가 고상한 티를 낸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 디즈니 홀에는 가본 적이 없다. 그 맞은편에 있는 콜번 스쿨의 지퍼 홀 음악회에도 몇 번 가본 기억은 있지만 디즈니 홀 문턱은 아직 넘질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켈틱 워먼’나 안드레아 보첼리가 LA에 온다면 한번 계획은 해 보겠지만 그런 좋은 음악당에 가려면 김치 냄새 풍기는 것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도 비싼 입장료 때문에 늘 주머니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요즘 한인 커뮤니티에선 그 비싼 디즈니 홀을 내 집 드나들듯 하며 연주회를 열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면 좋은 현상이다.
디즈니 홀에 걸 맞는 우리 한인 음악계의 무한한 발전상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해야 할까?
그러나 걱정스런 면도 없지 않다. 합창단 지휘자가 나도 디즈니 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는 우쭐감을 충족시키려고 앞뒤 안 가리고 자꾸 디즈니 홀로 끌고 가는 모양새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관료가 얼마나 되나 하고 인터넷을 뒤졌으나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음악 하는 분들에게 물으니 보통 성수기엔 3만 달러가 넘는다고 했다.
거기다 오케스트라 부르고 하면 5~6만 달러가 우습게 나가고 꽤 유명한 가수와 함께 무대를 장식할 경우 얼추 10만 달러까지도 소요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전 음악을 즐겨듣는 한인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증가되고 있다한들 그 엄청난 대관료를 물고 남을 만큼 비싼 입장료를 내고 거침없이 2,000여명이 들어서는 음악회가 그리 흔한가? 그럼 비싼 대관료를 무엇으로 다 메꾼다? 그 옛날 짤스부르크나 비엔나에 살면서 가난한 음악가들에게 큰 돈으로 인심 쓰던 음악애호 왕족이나 귀족들이 우리 한인커뮤니티에도 어디 숨어 있는가?
또 하나 토를 달고 싶은 것은 디즈니 홀 무대에 올려지는 노래들이 대개 찬송가나 성가곡이라면 꼭 거기까지 가서 불러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무슨 무슨 기관을 돕기 위한 기금 모금 음악회를 연다고 하면서 장소가 디즈니 홀이라면 대관료와 진행비 모두 빼고 나면 결국 깨진 독에 물 부은 결과가 뻔히 보이지 않는가? 어디 남는 게 있어야 기금 전달이고 뭐고 가능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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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노래하는 곳이라면 몰라도 교회 노래 부르는 곳이라면 교회당 말고 더 좋은 곳은 별로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가가 아니라서 이런 발상이 쪼잔함의 극치요 무지의 소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금 모금한다는 음악회가 대관료로 모두 빠져나가면 혹시나 음악회를 통해 모아지는 기금에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던 해당 단체들에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디즈니 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고 자화자찬하며 은근히 뻐기는 기쁨은 있어도 실속 없는 음악회로 둔갑해 버리면 그건 음악회를 빙자한 마음에 상처주기에 불과 할 수도 있다.
한때는 LA 한인타운에 있는 윌셔 이벨 극장, 혹은 윌턴 극장이 공연 장소로 각광을 받더니 이제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모두 디즈니 콘서트 홀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면 이게 합창단의 단순한 자기 과시용이 아닌지 자꾸 의구심이 생겨나서 하는 말이다.
사실 교회당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려 해도 공연장소로 각광받는 교회들이 대관료 수입에 달콤한 재미를 붙였는지 사용료를 슬금슬금 올려 버리는 바람에 번뜻한 교회당 하나 갖고 돈 벌이 잘한다고 눈을 흘겨도 사실 다른 곳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고민도 있기는 하다. 울며 겨자 먹기식이란 게 이런 경우 일 것이다.
사정이 그렇긴 해도 턱없이 비싼 대관료 부담하면서 LA 뮤직센터 공연장만 고집하는 것은 교회 음악 하는 분들이 한번 재고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월트 디즈니 홀 빌려놓고 여기 저기 후원해 달라며 돈을 구걸하러 다니는 모습은 음악을 고상하게 만들기는커녕 고상한 음악을 비천하게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 음악이라면 공연장으로서의 수준은 좀 떨어 진다해도 교회당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게 아닐까?  더구나 기금 모금 음악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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