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와 신앙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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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제자들교회>


패러다임(paradigm)이란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낡은 패러다임을 교체하는 과학혁명의 과정을 말합니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서 과학혁명의 과정을 설명한 사람은 토머스 쿤(Thomas Kuhn)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에서 제시하여 폭넓게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패러다임'은 '사례·예제·실례·본보기' 등을 뜻하는 헬라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에서 유래한 것으로 으뜸꼴 혹은 표준꼴을 뜻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언어학에서 빌려온 개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쿤은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론·관습·사고·관념·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사의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는데,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입니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됩니다.
즉 과학의 발전이 단순히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회혁명이 일어나듯 단절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단절적인 혁명은 하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을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라고 합니다.
패러다임은 과학자 집단에게 탐구해야 할 문제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까지 제공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당면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대안적 패러다임을 모색하게 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기독교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시도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이 정체되고 오히려 마이너스성장에 부딪히자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대안을 선택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안타깝게도 신사도운동입니다.
과연 신사도운동이 기독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신사도운동가들은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들을 사도라고 지칭합니다. 피터 와그너는 1990년대 이후를 ‘신사도적 종교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 시대’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종교개혁을 통해 2001년에 이르러 ‘제2의 사도시대’ 혹은 ‘신사도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신사도적’ 내지 ‘제2의 사도시대’라는 표현은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1세기에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서 다시 인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제2의 사도시대를 열기 위해 성령께서 3가지 사역을 준비시켜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로, 1970년대 ‘중보자’의 은사와 직임이 인정되는 일이었고, 둘째로 1980년대 ‘선지자’의 은사와 직임이 인정되는 일이었으며, 셋째로 1990년대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인정되는 일을 진행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01년에 이르러 마침내 제2의 사도시대가 개막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물론 피터 와그너 스스로도 자신은 ‘사도’라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로 신사도운동가들은 예배와 상관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행위를 합니다.
강제 쓰러짐, 금가루, 금이빨, 미친 듯이 웃는 웃음의 영이라는 행위, 예언을 빙자한 점봐주기, 임파테이션(영 전이)같은 행위를 하면서 치유사역이라며 검증할 수 없는 병고침(healing) 사역으로 샤머니즘적 주술을 하는 행위 등을 하는 곳은 100% 신사도운동 협력교회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사라지고 이러한 행위에 치중하는 모습이 과연 기독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행위를 도입한 교회들은 거의 교회의 수적 성장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진정한 성령님의 역사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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