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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벨 에어에 있는 PCUSA 교단 소속의 한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다. 시작시간 보다 약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엔 리셉션 테이블도 없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식의 경건성을 위해 정시에 예식이 시작되면 예배당 문을 닫고 리셉션 테이블을 아예 치웠다는 것이다.
예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축의금 받는 일에만 부산하여 정작 예배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룩한 예식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예식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예배당은 너무 아름다웠다. 예배당 유리창 밖으로 넓고 푸른 하늘이 그대로 눈에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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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부가 입장을 하는데 손에는 아름다운 부케가 아니라 성경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신부는 꽃다발 대신 작은 성경을 손에 들고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찬송을 부르는 순서가 되었다. 반주자 대신 CD플레이어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CD에 맞춰 누군가가 앞에서 기타를 독주하고 있었다.
자세히 예식장 분위기를 살펴보니 200여명의 하객이 참석했는데 모두 진지하게 예식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데나 나서서 사진 찍는 사람도 없었다. 교회에 속한 사진사가 있었는데 전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것은 예식을 집례 하는 분에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것만이 아니다. 신부가 입장하는 길에 깔아 놓는 '러너'라는 하얀 천도 깔지 않았다. 그냥 교회당 카펫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이 집안에 변호사, 의사도 많고 한국에서도 꽤 이름 있는 명문가문이었다고 들었는데 소문에 비해선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결혼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배는 경건했다. 은혜 충만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서약하고 축복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한인 2세들이지만 주례자는 미국 목사였다.
모든 순서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한국말이 아니어도 결혼예식은 신부의 하얀 드레스처럼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그런데 예식장을 더 자세히 둘러보니 꽃이란 한 송이도 없는 게 아닌가? 신부의 부케도 생략된 결혼식에 좌우 앞뒤 꽃다발도 없고 하객들이 앉는 자리에 쭉 걸어놓는 장식용 꽃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꽃 없는 결혼식이었다.
그 뿐이랴. 촛불도 없었다. 두 사람의 결합의 상징인 유니티 캔들도 없고 보통 양가 안쪽 부모들이 들고 들어서는 촛불도 없었다.
나는 꽃이 없어도 결혼식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날 처음 깨달았다. 꽃과 촛불이 없어도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한 결혼식이 가능 한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일반 예식장이라면 몰라도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에도 예배당 주변을 꽃으로 도배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대개 한 시간에 끝나는 결혼예식용으로 선택받은 꽃들은 결혼식이 끝나면 교회 사찰 집사님들의 손에 의해 서슴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 꽃값은 또 얼마나 비싼가?
알고 보니 그런 과시용 예식 비용을 줄여서 오히려 그 돈을 선교에 쓰겠다는 신랑신부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들 신랑신부들은 지인들을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인터넷에 결혼 축의금이나 선물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후원하는 몇 개의 선교회 후원구좌를 열어놓고 축의금을 거기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결혼식 비용도 아껴가며 검소하게 치른 것이 이해가 갔다. 결혼 축의금마저도 선교회 후원구좌에 입금하도록 결정을 내린 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오늘날과 같이 이기적이고 되바라진 세상에서 어찌 가능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이날 참석한 하객들에게 허름한 대접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베벌리 힐스의 유명한 식당 하나를 완전히 빌려서 손님들을 지극 정성 접대했다.
그 자리엔 술 잔도 없었고 썰렁한 댄스순서도 생략되었고 시끄러운 음악도 없었다. 친구들이 화음에 맞춰 마지막으로 복음성가를 불러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요즘 세상에 저런 젊은이들도 있구나!"라고 중얼거리며 하나님 나라는 저런 헌신된 주의 자녀들 때문에 이 어두운 세상을 막아서며 거침없이 넓혀 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흔히 우리 한인 2세들의 영적 교육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탄하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다. 한인교회들의 교회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모두 불신자로 돌아서서 교회를 등진다고 외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가 모두 부패했다고 정신없이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부패한 일부 교회가 있는 것이지 어찌 교회가 통째로 부패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학에 가서도 열심히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결혼할 때는 꽃값마저도 절약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선교회 후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신실한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꽃이 없어도 결혼식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다가선 이 결혼의 계절에 . . . .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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