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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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제자들교회>


월터 트뤼이트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과거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Reality Isn't What It Used to Be)에서 과거의 신앙적 습관이 현대인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별히 다음의 세 가지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붕괴(the breakdown of belief)입니다. 오늘날에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비유에 의하면 신앙은 시장에서 형성된 물건가격 정도에 불과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가격이 시대와 상황 그리고 문화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글로벌 문화의 탄생(a birth of a global culture)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신앙체계는 다른 모든 신앙체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절대적인 진리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새로운 양극화(a new polarization)의 형성입니다.
오늘날은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하나는“문화전쟁”(culture wars)입니다. 어느 문화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의 주도권을 쥐게 되므로 문화 콘텐츠의 개발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 전쟁의 승패는 결국 대중이 결정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신앙이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특허전쟁(patent infringemen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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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이 전면전이라면 이것은 국지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앤더슨은 진리에 대한 입장에 따라 객관주의자(objectivists)와 구성주의자(constructivists)로 구분합니다. 전자는 진리가 객관적이고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후자는 인간이 실체(reality)를 구성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세가지 대전환을 종합해보면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대중에게 주도권을 부여하고 신의 영역을 허락하지 않는 구성주의자가 승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포스트모던 이데올로기는 상대주의(relativism)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가 설자리는 어디일까요? 절대적인 진리와 신앙을 말하는 종교는 발붙일 곳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몇 가지로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타협(compromise)입니다.
작금의 현실과 타협한다는 것은 결국 선택해서 따라가다가 나중에는 어쩔 수없이 끌려가는 양태입니다.
과거에는 대립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고 과학이 종교와 부딪히는 모습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양립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국 교회는 시대의 문화와 문화 컨텐츠를 도입하고 사회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주도권을 쥐니까 ‘교회스타일’이나 ‘성당스타일’과 같은 패러디만 만들어냅니다.
둘째는 고립(isolation)입니다. 현실이 어떻든 기존의 기독교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일까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가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로부터 완전히 괴리가 되더라도 기존관념을 유지하고 전통을 고수하며 기독교의 색채를 유지하고 있어야할까요?
셋째는 지배입니다. 사실상 이것이 가장 성경적인 관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화전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지배할 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기도하고 성령님께 의지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교회는 현상유지조차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입장과 태도는 어떠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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