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gif

<조명환 목사>

 

 

유명하다는 ‘노던 트러스트 오픈’ PGA 골프대회에 구경을 갔다.


LA 한인타운서 가까운 UCLA 근처 퍼시픽 팰리세이드에 있는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서 열린 터라 점심 먹고 잠깐 갤러리 자격으로 구경 나간 것이다.


퍼블릭 골프장엔 몇 번 따라 나선 적이 있지만 프라이빗은 다녀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골프에 미쳐있는 형편도 아니니 그냥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친구 따라 강남길에 유명하다는 한인 PGA 선수들을 거의 모두 만나게 되었다.


 ‘탱크’ 최경주를 비롯하여 노승열, 찰리 위, 배상문, 양용은 등등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뿐인가?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맥글로이를 뺀 유명 PGA 스타들이 즐비하게 내 눈에 나타나는 것이다.


우즈와 맥길로이는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


골프 채널을 주름잡고 있는 그 유명 스타들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나게 되니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웹 심슨, 버바 왓슨, 웨스트우드, 룩 맥도널드, 빌 하스, 필 미켈슨, 맥도웰……. 그런데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퍼팅 연습을 끝낸 남아공의 어니 엘스에게는 모자에 사인까지 받는데 성공한 것이다.


함께 간 친구가 모자를 주며 사인을 청하자 어니 엘스는 조금도 귀찮지 않다는 듯 여유있는 미소와 함께 내가 내민 골프 모자에도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그의 사인이 얼마나 소중한가보다도 내 모자에 사인을 해주는 어니 엘스와 그렇게 가깝게 마주 볼 줄은 생각하지 못하고 나선 길에 횡재를 한 셈이었다.


골프 왕초보가 어니 엘스 같은 골프 스타를 마주보며 사인을 받았다면 횡재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몇 년 전 할리웃의 CNN 방송사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많이 본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엘리베이터에 들어 왔다.


노인네는 혼자 타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무심코 “하이!”라고 말했고 나도 표정 없이 “하이!”란 말로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내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고 보니 그 노인네는 래리 킹 라이브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래리 킹’이 아닌가?


얼굴을 대면하여 ‘하이’란 인사를 주고받았건만 그 유명인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줄은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너무 서운하게 헤어진 것 같아 못내 아쉬워한 적이 있다.


TV에서 자주 만나는 그였지만 실제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난 추억과 감동은 오래 가슴에 남아 있던 기억이 있다.

 

십자가.JPG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슈퍼스타와의 예기치 않은 만남이란 분명 가슴 뛰는 일이거늘 만약 부활하신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날 날이 찾아올 때는 과연 그 감격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일이 생애 최고의 영광이긴 하지만 그럼 오늘날의 비아 돌로로사를 거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시는 주님을 대면하게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때도 여전히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를 만났다고 펄쩍 뛰며 반가워할 수 있을까?


제자들은 어찌했는가?


수제자 베드로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고 12제자 가운데 대부분은 십자가의 불똥이 자기 인생에 달라붙지 않을까 모두 도망 길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런걸 보면 성모 마리아와 함께 골고다 언덕 십자가 밑에까지 주님을 뒤따르다가 마침내 ‘십자가상의 칠언’ 가운데 한 마디를 부탁받은 사도 요한은 보통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강심장이었다.


사순절은 주님의 부활하신 얼굴과 대면하는 영광의 시간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을 쓰신 주님을 대면하는 불편한 시간이다.


채찍을 맞고 얼굴에 피가 흐르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모습은 치욕이었다.
그 치욕의 자리를 대면할 용기가 없어 몸을 숨긴 제자들을 생각하면 우리들도 뻔할 뻔자다.


우리가 제자들보다 힘 쎈 통뼈도 아니고 날고 기는 스파이더맨도 아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가끔씩 슈퍼스타를 만나는 감동의 대면도 있지만 거부하고 싶은 부끄럽고 치욕스런 대면의 때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나는 감동이 있기 위해서는 피 흘리시는 고난의 얼굴과 대면하는 것이 먼저다. 부활은 십자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니 엘스를 만나 사인 받은 것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거늘 부활의 아침 주님을 만나는 감동을 무엇으로 형언하랴!


그러나 그런 가슴 떨리는 감동과 환희가 있기 위하여 다시 만난 금년의 사순절에는 내가 받을 채찍과 피 흘림의 고통을 대신 하시는 그분의 아픔에 동참하는 절제와 헌신과 경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사순절엔 여기저기서 회개의 통곡소리가 들려야 한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