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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NBA 파이날 3차전 경기 시작에 앞서 구장 한 복판에서 미국 국가를 부른 사람은 멕시컨 소년이었다.


이름은 11살의 세바스티언 델라 크루즈. 전통적인 멕시컨 길거리 악사 의상을 입고 나와 국가를 열창해서 박수를 받았다.


디펜딩 챔피언 마이애미 히트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피말리는 접전이 예상되던 이날 샌안티니오 시장 쥴리언 카스트로가 이 소년을 소개했다. ‘아메리카스 갓 탈렌트’의 준결승까지 진출했던 세바스티언은 자랑스럽게 국가를 불렀고 이를 본 여배우 에바 롱고리아는 트위터를 통해 “같은 멕시컨 아메리컨으로서 세바스티언은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대한 심볼이었다.
그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인종주의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멕시컨이 미국 국가를 불러?” 트위터에 이 소년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성 발언이 쏟아져 나오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놀라서 “어찌 이런 일이?” 라며 끼어들었다고 한다.


이같은 인종주의자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어이없어야 할 이 소년은 방송에 출연해서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제 삶에 대해 잘 몰라요.
제 아버지는 미국을 위해 해군에서 복무하셨어요.
그리고 전 샌안토니오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미국인이예요."


이 소년은 외모와 이름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부모의 가르침까지 전하며 방송을 마치자 그를 지지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홍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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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어이없는 인종편견의 불똥을 잠재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NBA 측은 4차전 경기 오프닝에서도 이 소년을 불러 국가를 부르게 했다.


 그리고 이날 스퍼스의 감독 그렉 포포비치는 세바스티언에 대한 인종 비하 발언은 ‘무식한 바보들(idiots)'의 소치라고 쏘아붙였다.


이 땅에 사는 소수 민족으로서 이같은 소동을 지켜볼 때마다 우리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포포비치의 말대로 그런 짓은 ‘무식한 이디엇’의 소행임에 틀림없다.


사실 우리는 한국을 떠나 일본이나 하와이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으니 적어도 세상 구경은 할 만큼 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문교부 가방끈이 짧은 것도 아니다.

다만 영어가 미숙해서 가끔 기가 죽는 일 말고는 별로 꿀릴 것도 없다.


사실 미국 사람들 중에는 태어나서 외국 이라곤 한발자국 밟아 보지도 못했고 비행기도 못타본 사람, 학벌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학벌이 낮고 외국 여행 한번 못해 봤다고 이를 무식의 범주에 싸잡아 매는 것은 또 다른 무식의 소치로 비칠 수 있긴 하지만 미국 국가를 부르는 미국 태생의 멕시컨 소년을 보고 시비를 거는 인종차별주의는 대개 그런 무식꾼들의 지적 수준에서 가능하기에 아마 포포비치도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무식한 이디엇이 그렇게 많지 않기에 우리는 이 나라에 희망을 건다.


우리가 사는 남가주 지역 LA 코리아 타운엔 ‘안창호 우체국’이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인터체인지 가운데 하나인 10번 프리웨이와 110프리웨이가 만나는 프리웨이 교차로 이름도 ‘도산 안창호 인터체인지’로 명명되어 표지판이 붙어있다.


학교 이름 중엔 ‘찰스 김 초등학교’가 있고 ‘김영옥 중학교’도 있다.


모두 한국인의 이름을 딴 학교들이다.


 오는 8월엔 미국 다이빙 영웅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딴 ‘새미리 초등학교’가 역시 코리아 타운 주변에 들어서게 된다.


한국인의 이름을 딴 세 번째 학교다.


포포비치의 말대로 무식한 이디엇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어디 한국사람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을 짓느냐고 날뛰는 바람에 어림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걸 봐서 미국은 여전히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만나면서 세바스티언의 아버지가 가르쳤다는 외모와 이름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곱씹어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시키는 품격 있는 이민자가 되기를 다짐해야 한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건 사실 외식주의에 그토록 거부감을 느끼셨던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외모와 이름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외식주의자도 아니요, 인종주의자도 아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엇보다도 ‘칼라블라인드’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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