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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게 없지만 LA 다저스 팀으로 류현진이 수입(?)되자 “그래도 우리 한국 청년이 메이저 리그에서 누비게 되었는데 못 본체하면 역적이지!”라고 소리치는 내 친구의 말에 가책을 느껴 가끔은 그가 선발투수로 나오는 야구경기를 보고 있는 중이다.


박찬호가 백 넘버 61번을 달고 다저스에 있을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구장에 가서 응원도 하고 핫덕을 사주던 기억이 있다.


박찬호 티셔츠를 사주면서 그래도 우리는 같은 코리언이란 민족사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애쓴 추억은 나 혼자만의 추억은 아닐 것이다.


그가 사라진 후 추신수가 인디애나로 왔다가 요즘엔 신시내티 레즈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 마다 “잘한다! 추추 트레인”이라 소리치며 흥겨워 할 때도 많다.


지난달 다저스가 LA 에인절스와의 프리웨이 시리즈(같은 동네 팀끼리 프리웨이를 타고 오고 가며 경기를 하니까 붙여진 이름)를 벌일 때 류현진이 11번째 선발 등판하여 짜릿한 완봉승을 거둘 때는 야구장에 나간 사람들 못지않게 나 역시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그날 경기장에 나간 한인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류현진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TV에 비쳐지기도 했다.


류현진 때문에 재미를 붙여 야구 경기를 구경하면서 눈여겨보는 포지션 하나가 있다.


바로 캐처(catcher)다. 우리말로는 포수라고 한다.


류현진은 투수(pitcher), 그러니까 볼을 던지는 포지션이다. 야구는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받는 과정에서 공격 팀의 타자가 내리 치는 것으로 진행된다.


만약 타자가 홈런을 치면 그날의 스타가 되고 만루 홈런이라도 때리는 날이면 그날의 영웅처럼 갑자기 수퍼스타로 떠오른다.


그런 타자들가운데 다저스의 멧 캠프도 있고 아드리안 곤잘레스도 있다.

 
에인절스에는 전설적인 앨버트 푸홀스를 비롯하여 이름만 대면 모두 알아 채리는 명 타자들이 수두룩하다.


류현진처럼 메이저 리그 데뷔 1년도 안되어 완봉승을 기록함으로 스포츠 뉴스의 머리기사로 뜨는 스타 투수가 있는가하면 볼 한번 잘 때려서 한방에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캐처는 어떤가? 그에겐 홈으로 들어오는 홈런타자의 당당한 기백도 엿볼 수가 없다.


스트라익으로 3명의 타자를 타석에서 끌어내리는 피처의 통쾌한 승리감도 읽을 수가 없다.

 

캐처는 우선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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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가 직구를 날리던 변화구를 던지던 공을 잡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때로는 동료인 투수가 던진 볼을 얼굴에 맞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타자의 방망이를 얻어맞는 경우도 있다.


심판도 헬멧을 뒤집어쓰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손을 움켜쥐고 스트라익이라고 외마디 소리라도 터트릴 수 있지 않은가?


캐처는 분명 야구의 들러리로 보인다.


그런데 캐처는 정말 들러리일까?


캐처없는 야구경기를 상상할 수 있는가?


캐처는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이긴 하지만 투수와는 천지 차이처럼 보이는 캐처에게서 우리는 포수 리더십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야구장을 한눈에 바라보며 경기의 흐름을 읽고 있는 자리가 포수의 포지션이다.


알건 다 알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제일 민감하게 알아차리지만 자신은 숨은 자리,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땀을 흘리는 리더십, 그게 포수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홈런타자를 꿈꾸고 완봉승이나 퍼펙트 게임을 꿈꾸는 에이스 투수가 되고 싶어 한다.


어느 단체나 기관에 가도 그렇고 요즘 여기저기서 열리는 교단 총회를 가 봐도 그렇다. 조연도 없고 포수도 없다.


 하나같이 주연이 되고 싶어 하고, 빛나는 승리투수가 되기 위해 인생을 건다.


주연은 고사하고 조연으로 밀릴지라도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책임 있게 실천하여 결국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포수 리더십 . . .


이게 실종되다보니 기독교는 위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자리싸움으로 자꾸 혼탁해지는 우리네 교계에서 포수 리더십은 참으로 그리워지는 섬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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