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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이별의 달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모두 ‘8월의 이별’을 알고 있다.


아니면 금년에 그 이별을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품에 끼고 살던 아이들을 대학 기숙사로 떠나보내는 달이니까 이별의 달이다.


대학 기숙사까지 따라가서 필요한 것들을 꼬치꼬치 챙겨주고 근처 모텔에서 하루 밤을 자고 난 다음 날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올 때 울지 않는 어머니들이 거의 없다.


잘 적응해야 할텐데 . . 탈선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 .주일에는 예배당에는 나가야 하는데. . . 아픈데가 없어야 하는데 . . . 혹시 술 마시는 룸메이트를 만나면 어쩌나. . . 아니 마약 같은데 손을 대면 큰 일인데 . . 기숙사에 아이를 남겨 놓고 집으로 돌아서는 비행기나 장거리 여행길에서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도 마음에 걸리고, 혹시 무슬림이 룸메이트로 걸리면 어찌하나 등등 걱정은 꼬리를 문다.


그러나 부모님들이여, 걱정하지 마시라.
아이들은 그렇게 둔하지 않다.


부모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헤어질 때의 근심에 찬 아이의 표정도 금방 잊어버리시라.


하루 이틀 캠퍼스에 익숙해지면서 금방 해피 페이스로 바뀌게 될 테니까.


13년 전에 아들을 UC 버클리에 데려다 줄 때는 태평양 바닷가를 따라 차로 올라가면서 이별 준비를 했다.


함께 사는 할머니도 동행했다.


피스모 비치, 아빌라 비치를 거치면서 우리는 계속 가족사진도 찍었다.


아무 말 없이 긴장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모든 가족들이 재롱을 떠는 모양새를 보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애썼다.


정해진 기숙사 방을 배정받아 침대와 이불, 책상, 컴퓨터 등을 챙겨주고 혹시 한국 라면을 그리워할지 몰라서 ‘농심’ 라면 몇 개도 챙겨주고, 금방 덥혀 먹을 수 있는 휴대용 ‘햇반’도 몇 개 사주고 왔다.


아플 때 먹으라고 타일레놀, 펩토비즈몰, 앨러지 약, 붕대, 일회용 반창고 등등을 차곡차곡 담아 약상자까지 만들어 캐비넷에 넣어 주었다.


자기 방에 있던 그림까지 떼어다가 기숙사 침대 주변에 붙여 주기도 했다.


마치 집처럼 느껴져서 외로워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 .
헤어질 때 할머니는 곱게 간직하고 있던 100달러 짜리 ‘비자금’을 꺼내 손자 손에 집어 주었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차례차례 오랜 이별의 포옹을 했다.


그런데 몇 달 후 혹시 학교 잘 다니고 있나 해서 불쑥 기숙사를 찾아 갔을 때 정성껏 챙겨주었던 약상자는 열어보지도 않은 채였고 농심 라면과 햇반 위에는 뽀얗게 먼지만 쌓여있었다.


아내가 챙겨준 대부분의 물건들은 무관심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대학가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지나친 오버센스는 결국 쪼잔한 노파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 부모들의 제일 관심사는 우선 하우징이다.
대개 1학년 때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니까 혹시 캠퍼스 미니스트리가 운영하는 기숙사라면 금주, 금연은 당연한 것이고 신앙생활 하는데도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 같아 우선 마음이 놓인다.
예컨대 알라바마 주에 있는 트로이 대학은 신앙 중심의 기숙사(faith-based dorm)를 오픈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 학교들이 전국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더러 있다고 한다.


모든 공립 대학 기숙사가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이들을 언제까지 그런 보호막에 가둬놓고 보호해 줄 수 있을까?


공립학교가 썩었다고 비웃으며 비싼 등록금 아랑곳 하지 않고 유명 사립학교로 보내고, 세상 모든 학교들을 믿을 수 없다며 홈스쿨을 허가받아 집안에서만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아이들이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 영혼을 유지하며 A+ 장학생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까?


대학 기숙사는 아이들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의 허다한 지식과 이념, 다양한 가치와 종교들과 맞서 자기 것을 고수해야 하는 영적 요새라고 해야 옳다.


미국 대학가의 술판 문화는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밤새토록 술에 찌든 친구들이 난장판을 피우던 동성애 그룹들이 어떤 해괴한 퍼포먼스를 벌이던 자신의 스탠스를 유지하며 뚜벅뚜벅 상아탑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꿈의 세계로 비상하는 영적 내공!


그것은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맞서서 극복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
그런 흔들림이 없는 영적 무장 태세를 갖춰 대학으로 파송(?)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게 허술할 때 우리 아이들은 ‘잃어버린 영혼’이 되어 캠퍼스를 배회할 것이다.
기독교는 수도원의 종교가 아니라 시장터의 종교다.


대학생쯤 되었는데 부모들이 해 줄 것이 사실은 많지도 않다.


요즘 대학문화는 시장터를 방불케 하지만 그런 자유의 시장에서 마음껏 진리를 추구하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길에 조금은 흔들림이 있다 해도 그냥 묵인해 주는 기다림의 세월도 때로는 필요하다.


8월은 아이들 인생에 ‘성인 ID 태그’를 달아주고 지나친 간섭과 걱정의 끈을 끊어내는 달이다. 아픈 8월의 이별 후엔 머지않아 성숙한 재회의 때가 찾아온다.


지나고 나니 ‘8월의 이별’은 가족사에 기리 남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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