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JPG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Q :  아이가 또래들과 어울려 놀다 싸움이 벌어지면 맞거나 울고 들어옵니다.


아이가 너무 순하고 착하다는 생각이 들어 너도 강하게 나가라, 너도 때려주라며 야단쳤습니다.


아이에게 나머지 뺨도 대주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A  :  사람들의 심성과 행동이 맹수화되고 있습니다.


처신도, 인간관계도 그리고 사회 전 분야가 공격적이고 대결적이고 파괴적이고 전투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무법과 불법이 판치고 합리적 사고나 행동의 사람들이 변방으로 밀려나고 목소리 크고 싸움질 잘하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가치관이나 가르침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매를 맞고 들어오는 아이에게 왜 등신처럼 만날 맞고 들어오느냐 너도 달려들어 두들겨 패든지 할퀴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때리면 맞아라 그리고 나머지 뺨을 대주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부모가 취할 태도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식이 매 맞고 코피 흘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성인군자 행세를 취할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곧바로 학교폭력 사태로 비화되고 법적 조치가 취해집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어려서부터 폭력적 행동과 공격적 태도로 성장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자식을 마치 개선장군처럼 대한다든지 인생 승리의 전조로 취급한다든지 대견스러워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곧 자식을 망치는 가정교육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백성이 험하고 사나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삶이 지혜로운 삶인가 그리고 승리의 길로 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교훈의 골자는 분명합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무저항보다 더 강한 저항은 없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박종순목사.jpg


그 교훈과 삶이 곧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외견상 십자가에 죽으심은 비통, 분노, 억울함, 패배,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못 박는 데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 재판장, 황제, 정권 모두 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생명세계의 문을 여셨고, 인간 구원의 등불로 오늘도 세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맞서 싸우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정당한 태도를 가르치십시오.


권모술수를 가르치지 말고 정도를 가르치십시오.


추한 처세법을 종용하지 말고 바른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러나 정당한 행동마저 포기한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고갈되지 않는 영적 에너지를 충전해주십시오.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