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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가면 웬만한 집 뜰에는 작은 부처상이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폼 잡으려고 세워둔 게 아니고 부처에게 절하고 복을 빌기 위해서다.


우리가 보통 집에 기도실이나 골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십자가를 붙이거나 예수님 초상화를 걸어놓는 것과 비슷한 신앙심이다.


이른 아침 탁발승들이 음식을 얻으러오면 그들이 들고 온 빈 주발에 정성스럽게 음식을 담아준다.
태국의 승려들은 음식을 구걸해서 먹는 것이 규율이다. 청빈을 실천하고 중생들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나라 승려가운데도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꼴 사나운 부정 부패 승려가 있다.


지난달 15일자 태국 언론들은 명품 매니아에다, 헌금 유용 혐의, 금기로 되어 있는 여성수십명과의 부적절한 성관계 등을 문제 삼아 금년 34세의 젊은 승려를 파문하기로 결정하고 승적을 박탈시켜 종단에서 내 쫓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청빈과 무소유의 불교 덕목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런 행각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왔다고 한다.


종단은 검소한 삶을 장려하는 불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고 질책하며 만약 15세 이하 소녀들에 대한 성폭행 혐의 등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승적박탈은 물론 체포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대기업 재벌 행세를 하는 모습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그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태국에서 거센 파도처럼 몰아쳤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달 거의 같은 시기에 브라질 방문길을 준비하던 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소재하고 있는 자신이 시무하던 대성당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당장 철거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교황은 모두 이태리나 독일같이 유럽에서 나오는 줄 알았지 남미에서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아르헨티나에서 새 교황이 나왔으니 남미 사람들에겐 얼마나 큰 경사이랴!


캐톨릭 교회당 주변에 가면 성모 마리아는 그렇다 치고 뭐 벼라별 사람의 동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런 동상 하나 세웠다고 지구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기분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너무 야박하게 치워버리라고 명령을 했으니 세운 사람들은 얼마나 서운했을까?


적당히 모르는 척 넘어가면 되는 일을 가지고. . . 그럼 매부 좋고 누이 좋고 식이 된다.


그런데 교황은 자칫 그런 것들이 한 인간을 영웅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야속할지라도 칼 같이 제거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승적을 박탈당한 그 태국 승려는 사실 인기가 짱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돈이 많았을 것 아닌가?


우선 언변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 놀라운 언변으로 설법을 하면 열렬 신도들이 그를 제왕처럼 떠받들었고 하늘 찌르는 인기에 영합하여 금전과 여성에 관한 추한 소문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결국 철창신세를 면치 못할 가련한 신세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우리 기독교 버전으로 바꾸면 30대 중반의 젊고 이중언어 확실한 장래가 촉망되는 목회자가 말솜씨도 수려해서 설교 한 번에 사람들이 뿅가는 은혜 충만, 뜨는 목회자를 떠올리면 된다.


여기 저기서 담임목사로 모셔가려고 안달이 난 능력의 종!


어디고 그렇듯이 그런 목회자에겐 광신도들이 그를 포위하고 그런 인기에 안주하여 여성과 금전에 관한 괴소문이 주변에서 끊이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한 달에 교회에서 받아가는 돈이 웬만한 목회자 1년 생활비와 맞먹는 목돈 수준이라면 그런 풍성한(?) 목회자가 어떻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성도들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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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흉내에 환장한 태국의 그 승려와 크게 다른바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동상 제거 명령을 내린 교황의 심중은 우리에게 말없는 공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개인의 인기가 높아지면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훔쳐가고, 하나님의 물질을 자신의 능력의 소산으로 계산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그는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반복해서 성직자들에게 ‘세속적인 영광의 유혹’을 멀리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세속적인 영광의 유혹....


사실 그 유혹을 물리치기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인가?


거기에도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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