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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 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 나오는 말이다.


역사를 바꾼 이 유명한 연설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에 있는 링컨 기념관 앞에서 워싱턴 마뉴먼트를 바라보며 한 연설이었다. 


그가 연설하는 연단 앞에는 인공 연못 리플렉팅 풀 주변으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웅변술의 정수로서 널리 추앙받고 있는 이 연설은 구약성서, 미국의 독립선언서, 헌법 등 상징적이면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소재들을 두루두루 사용한데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감동시키는 침례교회 설교 방식을 따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좌우지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와 함께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로 취급되고 있는 그의 연설과 함께 유명 가수 존 바에즈도 연단에 올라가 통기타를 치며 자유와 평등을 염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킹 목사의 연설은 이날 열린 워싱턴 대행진(March on Washington)의 하일라이트였다. 


그리고 이같은 흑인 민권운동의 결실로 놀라운 변화가 줄을 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안타까운 피살로 대통령에 오른 린든 존슨 대통령 때인 1964년 시민권 개정안(Civil Right Act), 1965년에는 투표권 개정안(Voting Right Act)이 각각 통과되었다. 


킹 목사의 연설이 낳은 정치적 산물이었다. 


링컨 대통령이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이래 킹 목사의 이 한방의 연설로 흑인들도 백인들과 똑같은 시민의 권리, 백인들과 동등하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그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이 해브 어 드림’ 연설은 다음 주 28일로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불과 50년 전 까지만 해도 흑인들은 투표조차 할 수 없는 철저한 ‘을’이요, B급 인생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킹 목사의 연설 후 50년이 지난 오늘 미국은 얼마나 변화되었을까? 


1963년 흑인 연방하원 의원은 5명뿐이었다. 금년 현재 의원수는 43명으로 늘어났다. 

100명의 상원의원 중 63년엔 한명도 없다가 지금은 한명의 흑인 상원의원이 탄생했다. 


그런 상하의원을 흑백으로 셈하기 전에 미국은 시방 역사상 최초로 흑인을 백악관 주인장으로 모시고 있지 않은가?


 흑인들은 이같은 혁명적 정치 신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금년 실업율을 보더라도 백인이 7%인 반면 흑인 남성은 15%에 이른다. 

실업율이 백인보다 두 배가 높다. 

흑인여성은 13%, 특히 20세에서 24세에 이르는 청년 실업율은 23%로 다른 인종에 비해 월등이 높다.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비율도 백인이 70%라면 흑인은 45%수준이다. 


타임지가 뽑아 낸 통계수치다.


더구나 지난달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트레이본 마틴이란 흑인 소년을 살해한 백인 짐머맨에 대한 배심원 무죄 평결사건에 대해 백인 49%가 옳았다고 대답한 반면 흑인은 단지 5%만 옳았다고 대답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흑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 나라 흑백 인종의 깊은 골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킹 목사는 50년 전 연설에서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 목사 한사람의 위대한 꿈과 위대한 도전으로 지난 50년 동안 이 나라에 피어난 자유와 평등의 물결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흑인들이 쟁취한 그 자유와 평등에 무임승차하여 기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를 포함한 이 나라의 소수인종들이다.


미시간의 한 교회 예배당에는 예수님과 마틴 루터 킹 목사,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는 벽화가 이번 주 타임지에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무지개를 배경으로 두 손을 높이 들어 이 두 사람을 축복하는 그림이다. 


그 벽화는 킹 목사나 오바마 대통령은 모두 ‘예수님의 빽’으로 등장한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흑인들의 신념을 대변하는 그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도 빠질 수는 없다. 예수님의 빽이라고 하면 한인 그리스도인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역사와 시대를 초월하여 세세토록 존재하시는 그 분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마침내 이 나라의 변화, 더구나 더 이상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지는 이 나라의 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위대한 지도자, 말하자면 ‘코리언 마틴 루터 킹’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면 그건 “꿈 깨세요, 깨몽”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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