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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복수 국적자에다 가문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당시로서는 빠지는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엘리트중의 엘리트인 그가 기독교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악역을 맡고 있었다. 


금방 ‘창립총회’를 끝내고 활동에 나선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붙잡으러 다니는 ‘일본 순사’같은 악질이었다.


그런데 그가 변한 것이다. 기독교를 가로 막는 악질에서 기독교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친 기독교계로 하루아침에 변신한 것이다. 


어디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다메섹에서 눈이 멀 정도의 강한 불빛과 함께 들려 온 예수님의 음성, “사울아, 사울아, 어찌 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란 말씀을 듣고 고꾸라진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전 이름은 사울이었다. 직접 대면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과의 그 영적 만남의 체험을 통해 그는 예수쟁이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사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다메섹이 없었다면 사울은 바울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메섹이 없었다면 사도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메섹이 없었다면 로마서도 없었을 것이고 고린도 전후서나 에베소서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 땅으로 퍼져 가지 못하고 어쩌면 팔레스타인의 지역 종교로 머물다 그냥 쇠잔하게 종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님이 1인자라면 사도 바울은 2인자다. 


그런 사도 바울을 회심에 이르게 한 것은 예수님이지만 회심에 이르게 한 장소 또한 중요하지 않은가?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다.


그 다메섹이 어디인가? 바로 다마스커스,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가 그곳이다.


그뿐인가? 수리아 안디옥은 지금이야 터키에 예속되어 ‘안타키야’라고 부르지만 한때는 시리아의 영토 안에 있었다. 


안디옥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사람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 기독교와 보통 인연이 깊은 도시가 아니다. 


스데반의 순교이후 초대교인들이 환난을 피해 이 도시에 몰려왔고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이방 선교, 세계 선교의 ‘작전 상황실’이 된 도시, 안디옥 . . .그 안디옥도 사실은 시리아에 있었다.

시리아는 아람, 혹은 수리아란 말로 성경에 여러번 등장하는 요르단, 레바논, 터키,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동국가다.


성경에 지명이 등장함으로 마땅히 ‘바이블 랜드’라고 불러야 할 그 시리아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 나라의 아사드 대통령이란 자는 세계가 다 아는 독재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반대파라면 파리 목숨처럼 백성을 죽이기로 악명이 높다. 유엔 난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으로 한 달 평균 5천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시리아 내전 전체 사망자수가 무려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아랍의 봄’이 리비아의 가다피, 이집트의 무바락에서 멈추고 아사드의 견고한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시리아의 현실은 아사드가 살아있는 한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을 가장 높은 가치로 따지고 드는 인류 공동체가 이같은 무지몽매한 독재 정권을 그냥 팔짱끼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직무유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아사드가 마침내 반군을 몰아내기 위해 화학무기까지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세계는 발칵 뒤집혔고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과 손잡고 미사일 공격 등으로 한번 손 봐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으로 약 1,3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오바마가 빼든 카드가 쉽지 않다는데 그의 고민이 있다.


여기서 아사드 가문의 독재 정치사를 살펴보자. 


현재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는 국방장관을 지내다 1971년 권력을 손에 쥔 하페스 아사드란 사람이다. 


그때부터 2000년까지 무려 29년을 장기 집권한 뒤 둘째 아들에게 권력을 넘겼다. 큰 아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 


그래서 권좌에 오른 둘째가 바로 바샤르 아사드란 현재의 대통령이다. 


그러니까 한 집안에서 42년을 해 먹고 있으니 정적이 없을 리가 없다.


문제는 이 가문과 정부군에 맞서며 내전을 벌이고 있는 반군의 우두머리들이 이슬람 형제단이란데 미국의 고민이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인 이들 이슬람 형제단은 오히려 세속적인 아사드 정권보다 더 국민들을 괴롭힐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아사드도 아니고 반군도 아니라는 양비론이 시리아 백성들의 입장이다.


이런 판국에 미국이 쉽게 군사개입을 결의하여 반 아사드 전선을 구축한다면 이슬람 형제단과 한패가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정치적 아이러니 때문에 미국의 처신은 진퇴양난.


 더구나 소련이 미국의 군사개입을 반대하고 나섰고 영국마저 의회에서 군사 행동 불찬성, 업친데 겹친격으로 미국내 여론도 찬성보다는 반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보니 오바마가 외로워진 것이다. 시리아 내전에 미국이 왜 끼어들어야 하냐고 화를 내고 있는 게 여론이다.


심지어 미국과 시리아가 붙으면 ‘아마겟돈 전쟁’의 시작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과 심볼을 마구잡이식으로 해석해서 ‘예언’이란 포장지에 담아 팔아먹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그런 아이템이 먹히고 있는 시장이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베리칩’ 소동이 조용해지나 했더니 이젠 아마겟돈 전쟁?


좌우지간 한 독재자의 잔인하고 난폭한 인간 살육을 그대로 묵인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지중해 바다에서 무턱대고 시리아 영공에 미사일을 쏘아 대거나 전투기로 쑥대밭을 만드는 것도 찬성할 일은 아니다. 


전쟁은 전쟁을 부르고 피는 또 피를 부르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 기독교 역사의 진로를 바꾼 그 거룩했던 땅, 시리아에 언제 다시 평화의 봄이 찾아오려나.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그 나라의 바울 기념교회, 아나니아 기념교회가 화학무기로 잿더미가 되고 미제 미사일을 맞아 공중 분해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 . .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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