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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의 목소리(Voice of Dodgers)'라고 불리는 ‘빈 스컬리(Vin Scully) 할아버지’가 내년 1월 1일 아침 패사디나에서 벌어지는 로즈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샬로 뽑혔다고 한다.

로즈 퍼레이드 조직위원회는 지난주 내년 새해 아침에 열리는 제125회 로즈 퍼레이드 그랜드 마샬로 그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로즈 퍼레이드 그랜드 마샬로 뽑혔던 사람들을 보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하여 부통령 시절의 리차드 닉슨, 밥 호프나 프랭크 시나트라 등과 같은 유명한 사람들, 그리고 1971년엔 빌리 그래함 목사까지도 그랜드 마샬로 선임된 적이 있으니 그 기라성 같은 반열에 빈 스컬리가 끼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영광은 물론이요 다저스를 사랑하는 많은 스포츠팬들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빈 스컬리는 누구인가? 

금년 85세의 다저스 야구 해설자다.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밤이 깊도록 정정하게 야구경기를 중계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다저스 중계를 시작한 것은 1950년. 

미국 스포츠 역사에서 특정 팀의 전담 중계, 연속 중계 기록을 세운 장본인이다. 

다저스에서만 63년째 중계를 해오고 있으니 구단 역사의 산 증인이요, 
다저스 구장엔 그의 이름을 딴 ‘빈 스컬리 프레스박스’란 기자실이 존재할 정도로 다저스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82년에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대개 야구 중계를 비롯해서 스포츠 중계를 할 때 해설자를 옆에 두는 게 보통이지만 그는 해설자 없이 혼자 중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설자의 협력 없이도 쉬지 않고 경기 중계를 이끌어 갈수 있는 충분한 준비성 때문이다.
한번 입을 열면 청산유수처럼 흘러간다. 

금년도 다저스의 빛나는 루키는 류현진과 야시엘 푸이그다. 

류현진은 에이스 투수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와 함께 다저스의 승리를 견인하는 자랑스런 ‘코리안 몬스터’다. 

박찬호 때의 ‘다저스 사랑’이 류현진을 통해 한인들에게 다시 부활되고 있다.

야시엘 푸이그는 ‘야생마’란 별명이 말해주듯 좌충우돌, 천방지축이라고는 하지만 우선 홈런에다 도루까지 시원스런 결정적 한방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어주는데 어찌 그를 미워할 수 있으랴!

류현진이 마운드에 오르면 스컬리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류현진의 이력서가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 나온다.

그의 고향이 어디고 류현진의 이름에서 ‘류’란 버드나무를 뜻한다는 말까지 해 준다. 
푸이그는 쿠바 출신으로 같은 팀의 구원투수 패코 로드리게스도 쿠바에서 왔다며 역시 줄줄이 푸이그를 소개한다. 

다저스가 이겼을 때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억울하게 패배했을 때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경기의 사실만을 전달한다. 

그의 이런 모습은 축구경기에서 자기네 팀이 한골을 넣을 경우 거짓말 보태 한 5분 동안 “고~~~~올”을 외치며 흥분하는 축구 중계자들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다. 

1955년 월드시리즈(WS)에서 다저스가 극적으로 최종전에서 우승을 확정짓자 흥분할 만한 빈 스컬리가 외친 말은 고작 "신사 숙녀 여러분, 다저스가 월드챔피언에 올랐습니다"라는 간략한 클로징 멘트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다저스 팀이 경기에서 지는 날이건 이기는 날이건 한결 같은 톤으로 “굿나잇 에브리바디”로 중계를 마감한다. 

절제된 중계매너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야릇하게 사로잡는 것이다. 

그래서 로즈퍼레이드에서도 그를 부르고 이미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야구 중계를 하며 살아온 63년의 세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직장, 한 직업으로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에겐 일관된 신념과 의지가 보석처럼 빛나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엔 쉽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너무 쉽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목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목사를 목자라고 부르기를 좋아하고, 목회를 목양이라고 미화하며, 성도들을 양떼라고 표현하기를 즐겨하는 목사들이 더 쉽게 양떼를 등지고 다른 목장을 찾아 훌훌 떠나가는 모습을 쉽게 목도하고 있다.

좋은 목자, 그러니까 양떼에게 좋은 목자란 쉽게 자신을 버리고 더 큰 목장으로 옮겨가는 목자일까? 

아니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이게 내 목장이요, 내 양떼거니 고집하면서 목장을 지켜내는 목자가 진짜 목자일까?

쉬운 목장이 어디 있으랴! 밤을 새워 양을 지키듯 성도들의 영혼을 지켜주는 목자 가운데 피곤하지 않은 목자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빈 스컬리를 보라. 어둔 밤을 대낮 삼아 지난 63년 동안 한 자리에서 야구만을 중계해 온 85세 스포츠 캐스터의 그 한결 같음.

세상일을 하는 사람 중에도 이렇게 평생을 한 곳에서 헌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목장이 좀 불편하다 하여 쉽게 보따리를 싸는 목자들은 너무 약삭빨라 보이고 계산만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후한 점수는커녕 얄밉게만 느껴지는 것이 나만의 속 좁은 편견 때문일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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