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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고 있다. 


LA 다운타운 직장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살고 있는 아들이 추수감사절에 우리 집에 왔다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다가 리빙룸에 세워두고 갔다. 


나머지는 부모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한주가 지나면 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올테니 트리 장식은 그때까지 미루면 될 것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애굽에서 ‘동지제’란 축제를 지킬 때 나뭇가지를 장식하는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로마시대엔 성목 숭배 사상이 있었는데 나무에 촛불을 켜서 나무를 경배하는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성목숭배? 별게 다 있었네.


그러나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산’이란 말이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숲속을 산책하다가 평소 어둡던 숲속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영롱한 달빛이 전나무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비춰 빛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루터는 여기서 깨닫기를 인간이란 어둔 숲속의 한 개 나무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때문에 몹시도 바쁘셨을 루터 목사님의 그 깊고 깊은 신심이여!


루터는 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고, 전나무에 눈 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리본과 촛불을 장식했으니 바야흐로 이것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크리스마스 트리하면 우선 뉴욕 록펠러 센터에 세워지는 트리를 떠올릴 수 있다. 

12월에 뉴욕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투어코스로 꼽힌다.


백악관에선 1891년부터 크리스마스 트리가 전시되었다고 한다.


넓고 넓은 미국 땅 어디에서 자란 나무가 과연 백악관 성탄트리로 군림(?)할 수 있을까? 


통계에 의하면 노스 캐롤라이나 주는 무려 11번이나 백악관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제공한 주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백악관 블루룸에 세워지는 이 트리는 전국 크리스마스트리 협회(NCTA)가 도네이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을 기억하시는가?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전사한 영국 해군 영웅 넬슨 제독의 거대한 기념비가 서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가 세워진다. 


그런데 이 트리는 영국에서 기른 나무가 아니다. 


매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시민들이 트리를 보내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맞서기 위해 노르웨이를 도와준 영국군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오슬로 시민들은 런던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선물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로마 교황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인 1982년부터 베드로 광장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 지금까지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내 추억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따로 있다.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도 아니고 베드로 광장의 것도 아니다. 

우리 조국 서부전선 최전방에 세워지는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다.


나는 신학교 재학시절 교회 청년들과 함께 애기봉에 가서 이미 점등이 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북녘 땅을 바라보며 ‘동방 박사 세 사람’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 성탄 찬송을 부르던 추억이 있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얼어붙은 그 추운 땅에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전파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북녘 땅에 마침내 자유와 평화가 찾아오는 날을 소원하며 노래를 불렀다.


애기봉에 성탄트리를 세워 처음 불을 밝힌 것은 1954년의 일이라고 한다. 


현재의 등탑은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것으로 해발 165m 정상에 세워지는 성탄 트리의 불빛은 20∼30㎞ 떨어진 개성 시내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은 “괴뢰들의 반공화국 심리전”이라며 성탄트리 점등을 비난해 왔고 최근엔 애기봉에 대한 ‘직접 타격’까지 거론하며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나에게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애기봉 성탄트리는 내 마음을 비추는 추억의 불빛이었다. 


다시 애기봉에 오를 일은 없겠지만 매년 때가 되면 트리에서 빛을 발하여 북녘 땅을 비추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년에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애기봉 트리 점등을 반대하고 나서는 바람에 애기봉은 그냥 암흑가운데 성탄절을 맞이해야할 처지라는 것이다. 


남북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각 교회들이 요구하는 성탄트리 점등식을 정부가 반대하고 나온 것이다.


아니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나라에서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지나친 북한의 눈치보기란 비난이 일고는 있지만 국방장관을 찾아가서 누군가 쎄게 나와야 할 사안이 아닌가?


애기봉 성탄트리가 꺼진다니 상업주의에 오염된 호화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마냥 좋아보일 것 같지가 않다.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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