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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발생한 엑산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는 같은 사고로는 역사상 최대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 사운드 일대에서 세계 제1의 정유회사인 엑산의 유조선이 좌초된 사고였다. 


사고가 발생하자 세계 도처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구호물자가 들어왔다. 


산더미처럼 옷이 쌓였다. 그런데 그 옷가지 중에는 여름옷에다 심지어 수영복도 엄청 끼어있었다고 한다. 


알래스카 추운지역의 피해 주민들에게 수영복을 구호물자로 전해주다니! 


결국 필요 없이 쌓인 이 옷가지를 없애는데 무려 20만 달러의 돈을 허비해야 했다고 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미주 지역 한인 교계와 커뮤니티에서도 팔을 걷고 구호물자를 모으고 성금을 모아 보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벌인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어느 미국 교회에서는 재난현장의 이재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려고 트럭을 렌트해서 6만 달러 상당의 냉동음식을 싣고 달려갔다. 


상하지 않을 냉동음식이 좋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한 것이다. 


도착해 보니 거긴 전기가 없는 세상이 아닌가? 


냉장고가 있어도 무용지물이요, 덥혀서 먹일 전기 공급이 끊어진 판국에 냉동음식은 그림의 떡이었다고 한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에서 읽은 기사내용이다.


지난주 필리핀에 엄청난 재난이 밀려왔다. 

사망자가 1만 2천여 명이고 인구의 10%가 태풍피해자라고 한다. 


국가 재난사태가 선포되었다.


그럼 위에 소개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덮어놓고 필리핀 행 비행기를 집어탈 생각을 하기 전에, 덮어놓고 재난현장을 위해 성금을 모으자고 광고하기 전에, 덮어놓고 구호물자 모으자고 선전하기 전에 필리핀 재난현장에서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타이푼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것이 필리핀을 덮쳤다고 하니 아마 복구 작업은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두르지 말고 필리핀 현장에서 전해 주는 ‘필요’의 소리에 우선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는 말이다.


 이런 재난현장을 경험한 믿을만한 기관의 말로는 구호물자보다는 현찰로 돕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찰은 현지의 필요에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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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에 수영복 구호물자, 카트리나 재난현장의 냉동 음식은 구제활동이라면 자신이 선구자라고 헐레벌떡 설치는 사람들의 생각 없는 넌센스가 불러온 부끄러운 결과물이다.


특히 미주에는 필리핀 이민자 커뮤니티가 있고 필리핀 교회협의회도 있을 것이다.


 그쪽과 직접 접촉하는 방법이 신속하고 정확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런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며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는 유명 자선단체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적십자사가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월드 비전’도 있다. 


월드비전은 정확한 재정 보고를 통해 성금의 투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재난현장의 고난 받는 형제들에게 전달해주려고 애쓰는 기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아들인 프랭크 그래함 목사님이 대표로 있는 ‘사마리아인의 지갑(Samaritan's Purse)’도 정직한 구호기관으로 너무 유명하다.


물론 우리 한인커뮤니티의 여러 기관들이 지구촌의 재난현장을 놓고 신속하게 구호 활동을 벌이는 것은 성숙의 모습이요 ‘선교대국’으로서의 실천적 박애주의의 모범을 보이는 훌륭한 사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아픔의 재난 현장을 팔아 이런 때 한건 올리자는 성과주의가 발동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때를 이용해 이름뿐인 선교회나 자선기관들이 인컴을 올릴 호기라고 착각해서 이리저리 재난의 신음소리를 팔러 다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 한인교계에서 성금을 모으자고 목청 높여 외치다가도 재정 보고 때가 되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지나치는 기관들에게 우리는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필리핀의 재난현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도하고 도와야 한다.


그러나 한건주의, 혹은 구제를 가장하여 자기실속만 챙기려는 ‘가짜’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경계심도 가져야 할 때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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