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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미쳐도 한참 미쳤다. 

스포츠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연봉 계약을 맺는 걸 보면 이 나라가 도대체 스포츠에 미쳐도 이렇게 미칠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느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골프공, 야구공, 축구공, 농구공. . . 도대체 그게 뭔데 그 공 잘 만지는 실력하나 보고 “억! 억!” 소리를 내면서 선수들과 수억 달러 장기계약을 맺는다는 보도를 읽을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 어쩌고 따지는 것 자체가 불쌍하고 처량하게 느껴진다. 

딴 나라 세상인가 보다 그렇게 접어두고 구경만 하며 살자고 체념하는 건 어디 나 하나뿐인가?

그런데 지난주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테이덤에서 열린 금년 수퍼볼 경기를 보면서 이 나라가 스포츠에 열광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또 한번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우선 수퍼볼 TV 광고를 보자. 

1초에 15만 달러. . . 30초 광고가 40백만 달러였다고 한다. 

미국 보통 시민이 꼬박 1년 동안 벌어서 먹지 않고 쓰지 않고 저축해도 그건 껌 값 수준이다. 수퍼 볼 1초 광고비와 비교하면.

그도 그럴 것이 2010년 이래 수퍼볼 TV 시청자가 1억 명을 넘어 금년에는 1억 1백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고 하니 수퍼볼 경기야말로 광고주들의 메카가 된 것이다. 

그래서 30초에 400만 달러가 아깝지 않다고 덤비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수퍼볼 광고는 금방 유튜브를 타고 그 이튿날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입장권 역시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VIP 티켓 한 장이 89만 9천 달러에 이른 티켓도 있었다고 한다.

수퍼볼 경기가 있는 날을 ‘수퍼볼 선데이’라고 부른다. 하필 왜 주일에 그게 열려가지고 목회자들의 마음을 조이게 하는 걸까? 

한인교회들도 수퍼볼 선데이가 되면 교인들이 얼마나 결석할까? TV 앞에 죽치고 있을 교인이 몇 명이나 될까 걱정이 태산이다.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요, 단일 종목으로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포츠 행사라고 할 만큼 수퍼볼은 미국의 ‘국민 운동회’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이쯤 되니 미국의 일부 대형교회들도 수퍼볼과 함께 흥분하기 시작한다. 

가족들과 함께 즐기라고 주일예배를 취소하거나 예배시간을 변경하고 나서는 것이다. 

금년 수퍼볼이 서부시간 오후 3시 반, 동부시간 6시 반에 시작되었으니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는 미국 교회 성도들에겐 수퍼볼 선데이는 그야말로 ‘고민 선데이’ 혹은 ‘갈팡질팡 선데이’가 된다.

예컨대 애틀랜타의 대형교회인 노스포인트커뮤니티 교회는 주일 오후 6시 30분 예배를 취소하고, 시애틀 시혹스와 덴버 브롱코스의 경기를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너그러운 배려라고 해야 하나! 

교회 홈페이지엔 아예 “수퍼볼을 즐기세요!”란 배너까지 올라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 DC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성당 등 일부 캐톨릭 교회들도 주일 저녁 미사를 취소했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당 관계자는 “수퍼볼 선데이 오후 5시 30분에 미사를 열어봐야 아무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신부님이 미사를 취소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예배시간을 변경한 교회의 담임목사는 “슈퍼볼 경기로 인해 예배 시간을 변경하는 것이 세속적, 혹은 죄악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예배의 시간을 정해 놓은 언급은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수퍼볼 경기를 시청한다. 교회로서 해야 할 일은 문화와 경쟁하는 대신 문화를 이용해 가능한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번 수퍼볼이 뉴저지에서 열리긴 했어도 시애틀과 덴버의 대결이었으니 시애틀 시민들은 더욱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을 것이다. 

더구나 사상 최초의 수퍼볼 우승을 코앞에 둔 마당이니 그들의 흥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런 시애틀에서조차 우린 예배시간을 변경할 수 없다고 나온 교회가 있었다. 

바로 마크 드리스콜 목사가 개척하여 대형교회를 이룬 마스 힐 교회(Mars Hill Church).
이 교회는 평소와 같이 수퍼볼 선데이에도 주일 5부 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 목사는 “예배 참석률이 저조할지라도 예배를 정시에 드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전통 명절인 구정이 마침 주일과 겹쳤다고 가정해 보자. 

일년에 한번 있는 민족 최대 명절인데 제사도 드려야 하고 세배도 해야 하니 주일예배를 토요일 저녁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면 이를 어찌 볼 것인가?

민족 명절을 생각해주는 끔찍한 배려는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고 문화를 이해해 주는 위대한 교회라고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마스 힐 교회처럼 문화는 문화고 교회는 교회다,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약속한 정해진 시간을 식은 죽 먹듯이 바꿔치기 하는 것은 예배의 순수성, 거룩성, 온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정해진 시간을 고집하고 나오면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로 판단해야 옳은가?

이렇게 줏대 없이 엿가락처럼 흐느적 대다보면 “동성애가 뭐가 나빠?” “낙태는 좀 하면 어때?”라고 달려드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문화적 도전 앞에 무슨 자세로 응대할 수 있을까?

타협하지 않고 꼿꼿하게 버텨온 복음의 순수성 때문에 기독교의 역사가 오늘에 이르렀거늘 광란의 스포츠 열기로 인해 마침내 복음까지 수퍼볼에 팔려가거나 머지않아 ‘수퍼볼 복음서’까지 탄생하는 거 아닐까?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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