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수칼럼.jpg
정인수 목사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유대인의 인생 학습서인 '탈무드' 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는 격언이다. 

감사의 인생은 불평의 인생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감사하지 못하면 마음과 육체는 쉽게 병이 들고 불행해 진다. 

우리의 신체는 마음과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사하면 맥박이 고르게 뛰며,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력을 증진시킨다, 기분마저도 상쾌하게 된다.

그러므로 감사의 인생은 장수의 축복으로 이어진다. 

장수하는 분들은 대부분 낙천적인 성격과 감사하는 성격이다. 

반면에 불평의 삶은 혈액 순환을 방해한다. 

맥박이 거칠게 뛰고 위장 운동을 정지시켜 뱃속에 들어온 음식의 소화를 거부한다. 

그래서 건강에 불편함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소유의 유무와 환경 조건에 상관없이 전천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살게 된다.

나는 그동안 전 세계에 절대빈곤으로 시달리는 선교지를 여러 군데 다녀 보았다. 

물론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고, 천연 자원도 없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들이 많았다. 

교육 시설이나 레저 시설도 전무하고 맨발로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아침마다 출근할 직장도 없고 공부할 학교도 없고, 심지어는 몸이 아파도 찾아 갈 병원도 없다.

그런데 그 분들의 행복 지수는 높다. 

왜냐하면 그러한 분들은 가족과 이웃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행복의 끈을 이어간다. 

선진국은 소득이 상승되어도 불만 지수, 불평 지수가 여전히 높다. 

그것은 늘 비교의식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이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정인수목사.jpg

그러므로 행복 지수는 어떤 객관적인 지표나 조건에 있지 아니한다. 

사람들마다 주관적인 생각에서 차이를 보일 따름이다. 

행복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결정된다.

몇 년 전 기근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는 에디오피아 작은 마을에서 며칠 생활하는 가운데 이런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끼니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라고 궁리하게 되었다.

 따뜻한 물도 전기도 없는 상황에서, 무엇하나 마땅히 먹을 것도 없는 그곳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가는 미국 생활은 얼마나 풍성하고 풍요한 환경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많은 소유, 그 쾌적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죽고 싶다! 왜 이렇게 힘든가! 안달하고 불평하는 우리들의 삶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한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 진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점에서 세상 사람과 차별화된다. 

성도는 감사에 대한 독특한 철학과 태도가 존재한다. 

성도의 감사는 일종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성도의 감사는 인생관 그 자체이어야 한다. 

감사는 신앙을 생활화 하는 사람에게는 신앙의 훈련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 그것은 절대로 믿음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향한 예배적 언어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으로 하여금 감사하는 천국의 태도를 키워 나가도록 훈련시킨다.

지금은 욥과 같은 시대이다. 

또한 살아가기가 쉬운 세상이 아니다. 

오직 감사를 생활화하고, 감사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인생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친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감사로 우리의 난관을 돌파하자! 

<아틀란타연합장로교회>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