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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전주대학교(총장 이호인)는 지난 2014년 6월 16일 개교 50주년을 맞아 설립자 강흥모 목사의 흉상 제막과 함께 스타타워 1층에 호남기독교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최근 기독교선교역사 순례지로 호남지역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순천이다. 

순천에는 순천시 기독교역사박물관이 있어서 19세기말 복음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 전남 동부지방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까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홍성덕 전주대박물관장(역사문화컨텐츠학과)은 “순천지역을 제외하고는 호남지역에 개신교 역사 문화가 가장 많은 곳이 전주”라고 소개하면서 “앞으로 호남기독교박물관이 전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역사 문화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함으로써 기독교 역사문화의 허브기능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884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 주재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obert Samuel Maclay, 1824-1907)는 고종에게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허락받았고, 그해 9월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알렌(H. N. Allen, 1859-1932)이 입국하였다. 

그리고 1885년 북감리교회의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1890~1951) 목사도 입국을 하였으며, 그후 호주 장로교, 침례교, 영국성공회, 미국남장로교, 남감리교 등에서도 한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라 각 지역의 선교를 전개해 나갔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기 교회를 운영하는 것과 스스로 전도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효율적 선교를 위해 한국에서 활동하던 네 개의 장로교 선교횐느 장로교협의회를 결성하였고, 선교지를 분할하는 예양협정(禮讓協定, a Comity Agreement)을 맺었다. 

  189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언더우드 선교사는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선교사역에 대한 강연을 하였는데, 그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은 미국 남장로교회의 테이트(Lewis B. Tate, 1862-1929, 한국명: 최의덕)와 그의 여동생 메티 테이트(Mattie S. Tate, 1864-1940, 한국명: 최마태),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1867-1951, 한국명: 이눌서)와 그의 아내 팻시 볼링(Patsy Bolling, 1868-1962), 전킨(William M. Junkin, 1865-1908, 한국명: 전위렴)과 그의 아내 메리 레이번(Mary Leyburn, 1865-1952), 린니 데이비스(Linnie Davis, 1862-1903)등이 한국 선교의 꿈을 갖고 선교사 파송에 지원하여 1892년 한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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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지역 선교사 흉상

이들은 예양협정에 따라 전라도 지방과 충청도 서남 일부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1893년 6월 레이놀즈의 조사 정해원이 전주 은송리에 선교사 주택을 마련하였다. 

1893년 6월 정해원 조사가 도착한 후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전주교회’(현 전주서문교회)의 시작이요 호남선교역사의 시작이었다. 

한편 1894년 3월 레이놀즈와 의료 선교사 드루(A. D. Drew, 한국명: 유대모)는 서울을 출발하여 군산, 전주, 영광, 목포, 순천 등을 경유하는 선교여행을 떠났다. 

두 달 가량의 여행을 통해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엄청난 일들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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