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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발라암 수도원은 14세기 중엽 발라암이라는 수도사가 바위를 올라가 작은 굴과 조그만 예배처소를 지어 죽을 때까지 지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16세기 초에 넥타리오스(Nektarios)와 테오파니스(Theophanis)라는 두 형제 수도사들이 이곳에 오면서 점차 수도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절벽의 바위를 깎아서 수도원으로 오르는 길을 만들어 놓아 어렵지 않게 수도원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사용하였다는 도르래와 밧줄이 있는 곳에 서니 아래쪽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밧줄을 타고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수도원으로 들어 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도 운반하였다고 한다.

수도원의 벽은 사방으로 절벽과 맞닿아 있으며, 예배당을 포함한 여러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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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본을 읽고 있는 수도사


예배당의 벽면은 온통 이콘(icon)으로 그려져있는데, 심판의 날,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 등 다양한 성화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안쪽 벽에 관에 누워있는 백골을 바라보고 있는 수도사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시신으로 세상의 부귀와 권세가 덧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빈손으로 백골이 된 채 관에 누워있는 수도자의 마음은 아마도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이곳에서 묵상하면서 그 그림을 바라보는 수도자들에게 큰 위안과 깨달음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예배당 옆에 있는 방에는 1만2천 리터나 되는 큰 포도주 통이 있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수도사들이 수도원 아래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만든 포도주로 세상 사람들에게 팔아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포도주는 아마도 최상품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면 아래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 박물관이 있다. 

작은 방 두 개에 설치된 전시대에는 16-17세기의 다양한 이콘(icon)들이 진열되어 있고, 수도사들이 사용하였다는 필사본들이 있다. 

주로 복음서들이었는데, 양피지에 쓰인 복음서들과 은으로 만든 표지로 된 복음서 등이 있다. 

그날 방문하지 못했던 가장 큰 수도원인 메타모피스 수도원에는 가장 오래된 861년도 희랍어 필사본이 있다고 한다. 

이 필사본 성경들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오직 묵상과 기도로 일생을 보내는 수도사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말씀이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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