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1.jpg
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2013년 10월 터키의 이스탄불(Istanbul)을 방문하였다. 

이스탄불하면 성 소피아 사원(Hagia Sophia)이 유명하지만, 국제성서박물관에 복제품이 있는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의 원본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을 방문하였다. 

터키는 공화국으로 이슬람을 국교로 택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 국민의 98%가 이슬람교이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석관, 시돈왕 타브니트(Tabnit) 석관 등, 온갖 종류의 많은 유물들과 함께 한 때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전경.jpg
▲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전경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는 수많은 유물들이 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유물을 꼽는다면 단연 카데쉬 조약(The treaty of Kadesh)과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이다. 

카데쉬 조약은 주전 1269년 지금의 터키 지역을 지배했던 히타이트(성경에는 헷 족속으로 나옴)의 하투실리스 3세(Hattushilis III)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Ramses II) 사이에 맺은 협정으로 국가 간에 상호불가침을 명시한 세계 최초의 평화협정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실로암 비문이었다. 

전시실 3층에 있는 실로암 비문은 앗수르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만든 지하터널을 만들었다는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고 난 후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에브라임지파의 여로보암이 세운 북쪽은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10지파들이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 왕국이라고 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지배하는 남쪽은 유다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유다왕국이라고 불렀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했다. 

701년 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 왕국을 공격를 공격했다. 

라기스를 포함한 유다 왕국의 대부분을 점령한 산헤립은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때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산헤립의 공격에 대비하여 예루살렘 성 밖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샘의 입구를 막고 그 곳에서부터 지하 터널을 파서 성 안에 있는 실로암 연못으로 물을 안전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공사를 하였다.

  기혼샘은 예루살렘에서 물이 솟아나는 유일한 샘이다. 

평소에 예루살렘 주민들이 성 밖에 있는 기혼샘의 물을 뜨기 위해 드나들던 문이 수문(watergate)이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아 놓고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나무강단에서 율법을 낭독하자 다 같이 통곡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성 밖에 있는 기혼샘의 물이 지하수로를 통해 성 안에 있는 흘러와 생긴 연못이 실로암 연못이다. 
‘실로암’의 어원은 ‘샬라흐’라는 동사로 ‘보낸다’(to send)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기혼샘에서 보낸 물이 만든 연못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눈먼 자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씼으라”(요 9:7)고 하심으로 눈을 뜨게 하신 이적을 행하기도 하셨다.      

<계속>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