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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제1 전시실에 있는 토기류는 초기 청동기시대에서 이스라엘 왕국시대인 철기 시대까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 청동기 시대(주전 3300-2250년)는 고대 근등지역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문자가 발명되고 정착경제가 가속화되면서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가나안 남부 지역의 아랏(Arad) 등지에서 발견된 이집트 토기류를 통해 이집트와의 문물교류 뿐만 아니라 비교연대 추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남부 네겝 광야에 위치한 아랏은 초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주전 17-16 세기 제작된 실린더 향수병은 중기 청동기시대 유물로 향유 등 값비싼 용액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아구리의 구멍이 매우 작아서 물병을 기울였을 때에도 용액이 방울 방울 떨어지게 하였다. 

토기 표면은 조개껍질로 문질러 광택을 내 토기의 질을 높였다.

제2 전시실에는 성서 시대의 일상생활과 관련한 등잔들, 전쟁 무기류, 향수병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화폐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대의 은전과 동전, 그리스-로마 시대의 은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유대의 은전이나 동전들은 주전 4세기에서 주후 4세기까지 시대별로 소개가 되고 있는데, 그중에 주전 4세기의 ‘예후드’ 은전(YHD Silver Coins, 주전 400-250년), 헤스몬 왕조의 동전(주전 103-37년), 유대 전쟁의 동전(주후 66-70년) 등이 있다. 

예후드 은전은 직경 6-8mm로 된 최초의 유대 동전으로 예루살렘에서 주조된 것이다. 

  ‘포로된 유대아’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유대아 캅타’(Judaea Capta)가 새겨진 은전은 주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비극을 상징하고 있다. 

은전의 앞면에는 예루살렘 점령의 주인공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초상이 있고, 뒷면에는 유다를 상징하는 한 여인이 종려나무(Palm tree)아래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종려나무 그림은 주전 2세기경 유다 마카비가 헬라의 유대인 박해에 항거하여 봉기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만든 동전에도 승리를 상징하는 의미로 새겨 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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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아 캅타’ 은전 뒷면에 종려나무 아래 슬피 울고 있는 유대여인의 모습을 새겨 넣은 것은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유대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면서 유대인들을 조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은전들 중에 특별히 로마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후 유대인 반란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바르 코흐바(Bar Kokhba) 혁명시대의 은전(주후 132-135년)이 인상적이었다. 

‘바르 코흐바’는 ‘별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132년에서 135년 사이에 유대인 혁명의 지도자였던 시몬의 별칭이었다. 

은전의 앞면에는 헤롯 성전의 전면이 조각되어 있고 한 가운데에 토라 두루마리를 넣은 토라 벽장이 보인다. 

은전의 가장자리에는 히브리어로 혁명 지도자의 이름 ‘시몬’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초막절에 유대인들이 손에 들고 흔드는 네 가지 거룩한 식물 중 두 가지인 룰라브(lulav)와 에트록(etrog) 주위로 ‘예루살렘의 해방을 위하여’라는 히브리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제3 전시실에 있는 기록문화의 유물로는 주후 3-5세기경의 남부 아랍어 석비, 주후 5-8세기 사마리아 반지 등이 있다. 

성서시대의 기록물들로는 파피루스나 양피지(parchment), 석비, 여러 종류의 인장, 그리고 토기 조각에 쓰인 오스트라콘(ostracon)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항아리 손잡이 조각들과 성서 시대의 신상들도 일부 전시되어 있다.

관람문의: 협성대학교 성서고고학박물관 (전화: 031-227-7782)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상리 8-1 홈페이지 : http://www.hyupsung.ac.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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