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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수퍼볼은 ‘바람 빠진 공’으로 구설수에 오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게 돌아갔다.

 쿼터백 탐 브래디도 노장이지만 흥분을 감춘 채 포커페이스로 지그시 경기장을 내다보는 빌 벨리칙 감독이야말로 백전노장처럼 보인다.

 지금은 LA를 떠나 뉴욕 닉스의 사장으로 간 ‘젠 매스터’란 별명을 가진 전 레이커스 감독 필 잭슨을 연상시키는 사람이다.

아리조나 글렌데일에서 열린 이날의 수퍼볼은 브래디와 벨리칙에게 최고의 날이었을 것이다.

반면 터치다운 2 야드를 남겨놓고 루키 말콤 버틀러에게 인터셉을 당하면서 눈에 보이는 역전승 챈스를 놓친 시혹스의 러셀 윌슨 쿼터백은 물론 사령탑 피트 캐롤은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날이었다. 
다 된 밥에 스스로 재를 뿌린 꼴이라고나 할까? 

24대 28로 결국은 뉴잉글랜드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승자와 패자는 그렇게 갈렸다 치고 이 수퍼볼 때 만 되면 괜히 잠잠하던 나의 심사가 뒤틀리곤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이 수퍼볼에 미쳐도 너무 과하게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있는 교회들도 그렇다. 

수퍼볼 선데이가 되면 수퍼볼에 순순히 백기를 들고 나온다. 

수퍼볼과 경쟁을 벌여봤자 뻔한 게임이기 때문에 아예 수퍼볼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당에 대형 스크린 TV를 마련해 놓고 어디 딴 데 가지 말고 교회에서 수퍼볼을 즐기라는 것이다.

TV 시청률도 그렇다. 해마다 역대 최고란다. 

그러니까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운다. 

NBC가 중계권을 갖고 있던 이번 수퍼볼 시청률은 49.7로 지난 2013년 볼티모어 레이븐스와 샌프란시스코 49ers 경기가 세운 종전 48.1을 뛰어 넘었다. 

경기를 시청한 미국인이 1억1,440만 명이었다고 집계되었다. 

이것도 역대 최고.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그런데 금년 수퍼볼 30초 광고료가 평균 450만 달러, 그러니까 1초당 15만 달러였다. 

이건 미친 짓이다. 

이해가 안간다. 물론 잃어버린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세 마리의 말들이 찾아내어 집으로 몰고 오는 버드와이저 광고를 보면서 “잘 만들었다!” 

감탄은 했지만 1초에 15만 달러는 너무한 것 아닌가? 또 우리가 이단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사이언톨로지까지 수퍼볼 광고에 등장한 것이 특이했다.

수퍼볼 막가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날 맥주 소비량이 3억2천만 갤런, 피자 400만 개, 치킨 윙 10억 개, 감자칩 1천120만 파운드가 팔렸다고 한다. 

수퍼볼 다음 날 병가를 내는 직장인 수가 15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수퍼볼 앞에 아메리카는 그야말로 크리에이지가 되는 날이다.

더 있다. 이날 7만 2천여 명 수용의 경기장 입장권이다. 

제일 싼 티켓가격이 2천800달러, 최고가격은 1만3천 달러였다니 아무리 돈 놓고 돈 먹는 무한경쟁 자본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걸 이해하고 넘어가란 말인가?

메이저 리그나 NBA, PGA와 같은데서 ‘억!억!’ 소리를 내며 억대 연봉을 챙겨가는 프로 스포츠 세계를 보면 저건 딴 나라 세상이라고 위로를 받기는 하지만 수퍼볼은 있는 자, 없는 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미쳐버리는 꼴을 보이는 것 같다.

이 폭력적인 스포츠에 열광하는 미국사회를 보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만큼 폭력적인 종족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기장에서의 빈번한 신체접촉으로 선수들의 뇌진탕, 목뼈 골절, 갈비뼈 부상 등은 밥 먹듯이 빈번하게 찾아온다. 

툭하면 들것에 실려 나가는 선수들을 보면 스페인의 투우가 생각이 난다. 

저런 잔인한 게임이 무슨 스포츠냐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바로 그 심정이다. 

프로 풋볼 선수의 1/3이 두뇌손상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된 적도 있다. 

그래서 풋볼하겠다는 아이들을 뜯어말리는 한인 부모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또 죽도록 싸우는 건 흑인들이고 희희낙락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백인들이라는 미묘한 인종간 우열을 조장하는 말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노예 신분의 검투사들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모습을 귀족들은 눈요기로 즐기던 옛날 로마시대 콜로세움의 현대판이 오늘날의 풋볼경기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엔 백인 선수들이 더 경기장을 누비고 있으니 그건 과장된 비약이라고 제쳐 두자.

좌우지간 풋볼에 미치는 아메리카를 바라보면서 “메뚜기도 한철이겠거니 . . .” 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복싱이 부자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군림하여 무하마드 알리가 전설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떤가? 

권투장갑을 끼고 사람의 머리를 두들겨 패는 야만적인 경기로 외면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지금은 라스베가스로 유배를 당해서인지 권투시합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관심 없는 스포츠로 전락했다.

아마 풋볼도, 수퍼볼도 복싱처럼 미국의 어느 도시로 숨어버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나도 즐겨 놓고 수퍼볼에 딴지를 걸자니 좀 미안한 생각은 들지만 환각제처럼 아메리카를 미치게 하는 수퍼볼 약기운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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