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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NBA 서부지역 플레이오프 1차전 디펜딩 챔피언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LA 클리퍼스의 7차전을 보면서 문득 나도 저런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 보았다. 


농구 구경하면서 문득 반성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차피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이니 그나마 반성문이라도 자주 쓰면 유익이 아닐 수 없으리라.


반성문은 다름 아니라 경기종료 1초를 남겨놓고 그야말로 전심전력으로 2점 점프슛을 성공시켜 마침내 지난해 NBA 챔피언을 누르고 시리즈 전적 4대 3으로 승리를 장식한 클리퍼스의 포인트 가드 크리스 폴 때문이었다. 


흔히 그의 이름 첫 글자에 등번호를 합쳐 CP3라고 부르는 크리스는 이날 109대 109 동점 상황에서 게임 종료 1초를 남겨놓고 무섭게 골밑으로 진격하여 들어가 천금같은 슈팅을 성공시킨 것이다.


선두가 바뀐 게 31번, 그리고 16번이나 동점을 기록하는 엎치락뒤치락 게임이었으니 그야말로 숨막히는 경기였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론에서는 클리퍼스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였다고 극찬 했다.


나 역시 이건 플레이오프 1차전이 아니라 NBA 챔피언 결정전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중심에 CP3가 있었다. 


그는 경기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 약간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였고 의료진이 계속 걱정스레 부상정도를 체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할 수 없는 한판승부, 여기서 밀리면 챔피언의 꿈은 일찌감치 물 건너가는 판국이라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햄스트링 부상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절체절명의 2점 결승골로 지난해 챔피언을 굴복시킨 것이다. 


블레이크 그리핀, 자말 크로포드, 제이제이 레딕, 디안드레 조단 등 클리퍼스 주전 선수들은 불꽃 튀는 공방이 끝난 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CP3는 벤치에서 참았던 눈물을 마침내 펑펑 쏟아냈다. 


최선을 다한 자의 눈에서 흐르는 저 뜨거운 눈물 . . .


최선을 다하고 난 후 후회 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최근 나에게 있었는가? 없다. 


그래서 이날 경기를 보면서 나는 노력해야 할 곳에서 적당히 발뺌이나 하고, 패전이 무서워 약은꾀로 전진을 우회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본 것이다.


우리는 우직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덕목인지를 깨닫지 못하거나 그런 삶의 태도를 오히려 천하게 비웃는 이상한 사회 환경에 도취되어 살고 있다. 


한방에 성공하려는 기회주의가 만연되었기 때문이다. 


한방에 SNS의 스타가 되고, 한방에 유튜브의 스타가 되고, 한방에 프로골프의 스타가 되고, 한방에 메이저 리그의 스타가 되고, 한방에 주식시장의 스타가 되는 그 한탕주의에 빠져 정직한 땀 흘림과 같은 절차는 안중에도 없다.


투자한 돈이 얼마나 널뛰기를 잘 하느냐에 따라 부자도 되고 거지도 되는 주식이란 이상한 나라의 돈벌이를 생각해 보자.


합법적이고 공공연한 현대인의 사랑받는 투기 수법이 되긴 했지만 요행을 바라는 기회주의가 버티고 있을 뿐 땀으로 이득을 환산하려는 정직한 노력 따위는 아예 거부되는 곳이다.


“땀 흘림이 없이는 달콤함도 없다(No sweat, no sweet)”는 말은 이 시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매일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시도 때도 없는 심방에다 각종 경조사에 불려 다니다 보면 특히 한인교회 목사님들의 업무량은 한마디로 오버로드(Overload)다. 


그렇다. 땀 흘림의 연속이다. 


그런데 정말 다 그럴까?


빈둥빈둥 놀면서 쉽게 성공해 보려는 게으른 목사들도 결코 적지는 않다. 

목사안수를 어디서 받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소위 ‘나이롱’ 목사들이 허다해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롱이라 할지라도 맡은 일에 충성하고 노력하면 나이롱이 비단이 될 수도 있다.

나이롱도 문제지만 건달 수준으로 실실 노력 없이 성공하려는 목사는 더 문제다. 


집사, 장로보다는 목사로 행세하는게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훨씬 도움이 될 성 싶어 목사가 되었다면 그 거짓 소명을 가려내지 못한 교단은 어디 있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은 안수위원들은 어디 숨어 있는가? 


사실 이름 있는 교단에서 나이롱 목사를 생산해 낼 리도 없다.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이민교회다. 


노력 플러스 알파를 쏟아 부어도 100명을 넘지 못하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절망가운데 숨어있는 헌신과 눈물의 부피를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0년 넘게 개척교회를 하면서 나도 ‘개척’이 요구하는 희생의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개중엔 노력하지 않고 모두 장로 탓, 교단 탓, 로케이션 탓, 전임 목사 탓, 원로목사 탓, 이민교회 탓, 모두 탓으로 돌리는 목사님들도 있다.  


노력보다는 무슨 탓으로 돌리는 핑계 속엔 영낙없이 게으름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 후에 후회 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지가 언제인가를 물어보자는 것이다. 


주제넘은 건방이 아니라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공유해 보자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이다.


최선을 다한 클리퍼스. . . 


그리고 최선을 다한 후에 뜨겁게 눈물을 흘리던 크리스 폴, 그런 감동의 순간이 언제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을까? 


햄스트링 부상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노력한 끝에 찾아오는 그 짜릿한 감동의 순간이 ....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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