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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 블루’란 말로는 모자라서 흔히 '쪽빛 바다'라고 부르는 지중해는 그야말로 짙푸른 남빛 바다다. 

그 쪽빛이 얼마나 깊고 푸르던지 그 빛의 유혹을 받아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람까지 있겠는가?

이탈리아 나폴리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바라본 지중해보다는 도시 전체를 흰색으로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 같은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한 지중해 바다 빛은 아직도 환상처럼 내 기억에 남아있다.

현재는 케흐리에스(Kehries)라고 불리는 겐그리아 항구는 사도바울이 수리아로 항해하기 전에 그의 서원을 위하여 삭발한 곳이며 바울을 도왔던 충성스러운 여집사 ‘뵈뵈’가 살던 곳이다.

수년전 그리스 여행 때 고린도에서 가까운 그 겐그리아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저 바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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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에 걸친 바울의 전도여행 목적지는 주로 현재의 터키와 그리스였다. 

그러나 4차 전도여행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는 신세였기에 전도여행이라기 보다는 죄수 호송루트였다.

그러나 그 죄수 호송루트를 통해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이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될 줄이야! 
지중해를 가로질러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는 순간 팔레스타인 촌락에서 시작된 복음운동 은 드디어 세계 문명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세계 역사 속에 폭발적인 복음의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바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중해는 복음의 첫 번째 대이동 경로였다.

 지중해를 타고 로마로, 영국해협을 타고 영국으로, 대서양을 타고 미국으로

지중해는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 혹은 ‘지구 한가운데 있는 바다’란 뜻을 갖고 있다. 

유럽 사람들은 중세 이전만 해도 지중해만 바다인줄 알고 살았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등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도 이 지중해에서 발생했다.

이 지역의 날씨가 하도 유명해서 ‘지중해성 기후’란 이름이 자리 잡았다. 

여름은 건조하고 겨울은 따뜻하고 비가 많은 날씨, 미국에서 유일하게 그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곳이 바로 남가주다.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은 모두 지중해 식단, 지중해 샐러드에 열광하고 있다.
 
지중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와 와인을 먹으면 덮어놓고 보약이 되고 장수의 비결이란 생각이 보편화되었다.

그런 지중해가 지금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전쟁과 가난,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지 못한 채 물에 빠져 죽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만 벌써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던 950명과 400여 명을 태운 난민선이 모두 난파되어 거의 모두 생명을 잃었다. 

탈출에 목숨을 걸었지만 목숨을 빼앗는 바다 앞에 속수무책이다.

내전과 가난을 피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죽음의 행렬’은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지금도 리비아 항구에서 밀항을 고대하고 있는 대기자들이 최대 100만 명에 달한다는 것.

그런데 이런 절박한 난민들의 절망을 장사 속으로 이용하는 밀항업자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 밀수업자들이 대명천지에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중해 밀항 알선업 규모가 연간 3억에서 6억 유로 규모라고 하니 현대판 노예무역인 셈이다.

돈 없는 난민들은 배 삯을 마련하기 위해 채찍을 맞으면서 노예처럼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니 난민들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국제 여론이 높아지자 유럽연합(EU) 장관들이 지난주 룩셈부르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협의했다. 

난민구호작전에 자금지원을 늘리는 한편 리비아에서 활동하는 밀항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밀항에 사용되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선박들을 모두 파괴해 버리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이러자 밀항을 도와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밀항알선업자들은 “지중해 해변에 밀항로가 어디 리비아 뿐 인 줄 아느냐? 밀항로만 더 길고 넓어질 뿐”이라고 EU를 비웃고 있다.

뾰족한 해결책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춥고 배고파서 살길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 EU가 문을 여는 길 밖에 없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가난뱅이에다 더구나 무슬림들이니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유럽의 깊은 고민은 이해가 간다.

아무리 그럴지언정 지중해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접근금지를 위해 철조망을 높여가거나 침몰하는 난민선을 보고 구경만 하는 인정머리 없는 배타주의는 결코 EU가 추구하는 유럽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복음의 대이동 경로였던 지중해가 바다를 건너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좌우지간 희망의 바다가 되어야 할 텐데 .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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