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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성막문을 양의 문이라고 한다. 
양문이란 양이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막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죄사함을 받기 위한 것이다. 

죄사함을 받으려면, 나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될 속죄양이 있어야 한다. 
성막문은 희생양과 함께 들어가는 곳이라고 해서 양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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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올 때 양을 끌고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교회에 들어올 때 나 혼자가 아니다. 

교회는 나를 위해서 친히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과 함께 오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요 10:7)이라고 말씀하셨다.
“피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히 9:22)고 했다. 

죄값은 피로 갚아야 하는데, 내 죄를 내 피로 갚으면, 나는 죽는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희생제물의 피로 대신 갚도록 하셨다. 
그것이 희생제사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 뜰로 들어오는 북쪽 문이 ‘양문’이었다(요 5:2).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올라온 백성들이 이곳에서 제사장에게 제물로 드리기 위해 갖고 온 양을 검사받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차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양들이 더러워지기도 하고, 길에서 넘어지거나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기도 하였을 것이다.

  양의 주인은 제사장에게 검사받기 전에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연못에서 먼저 양을 깨끗하게 씻고, 상처난 곳이 있으면 치료를 하였다. 

그곳이 ‘베데스다’ 연못이다. 

‘베데스다’ 연못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양을 씻는 곳이라고 해서 ‘양의 못’이라고도 불렀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베데스다 연못이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제물을 씻는 물이니까 치료의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베데스다’ 연못에는 다섯 개의 행각(정자)가 있고, 그곳에는 온갖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이 모여 있었다. 

연못의 이름을 ‘베데스다’, 즉 ‘자비의 집’이라고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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