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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코리아 타운도 노인운전자의 사고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시력이 저하되어 차선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스톱 사인 앞에서 법대로 정차하지 않는 바람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충돌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전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에 따르면 2020년까지 65세 이상의 노인운전자는 약 4천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전체인구의 10%를 훨씬 넘는다. 노인운전자가 늘어나다 보니 길에서 죽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한해동안 사망한 65세 이상의 노인운전자는 5,560명으로 집계되었다. 


길에서 사망하는 미국인 전체의 17%에 해당된다. 


또 같은 해 21만4천명이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좌우지간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20년 새 17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자동차는 잘못하면 달리는 살인무기다. 


노인이 운전할 경우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눈이 침침하고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밟는 순발력도 예전 같지가 않다. 


판단력도 마찬가지다.


그럼 집에서 손자나 보면서 바깥출입을 포기하라던가 아니면 운전면허증을 회수하겠다면 아마도 노인폭동이라도 일어 날 것이다. 


“천하에 고얀 세상 같으니라구!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라고? 내 나이가 어때서?”


 아마 노인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에 나설 만하다.


100세 건강시대니 어쩌구 떠들면서 약장사는 약장사대로 노인들 상대로 다 해 먹고, 병원은 병원대로 노인 때문에 배를 불리면서 그 노인들이 교통사고 낼까봐 면허증은 회수하겠다면 그건 괘씸하고 고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노인프렌들리’ 교통문화로 변화될 궁리를 먼저 해주는 게 도리다.


우선 교통표지판의 크기도 키우고 칼라도 좀 더 칼라풀하게 . . . 노인치고 백내장이나 녹내장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사거리에서 좌회전할 때 한국에선 비보호 좌회전이란 말을 쓰고 있었다. 


앞에서 오는 차가 없으면 그린 라이트에서 알아서 좌회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력과 판단이 어눌하다 보니 멀리서 오고 있는 차도 금방 돌진할 것처럼 느껴져서 사거리 한복판에서 그냥 갇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고약한 인터섹션을 좌회전 화살표 표지판이 있는 신호등으로 바꿔 준다면 노인들은 훨씬 세이프한 마음으로 좌회전을 시도 할 것이다.


실제로 트래픽 신호등을 조금 밝게 했더니 65세 이상 운전자들의 부상 충돌사고가 13%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십자로 형태의 인터섹션을 로타리(roundabouts) 바꿨더니 부상 충돌사고는 무려 76%까지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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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모든 공공주차공간의 명당자리는 모두 핸티캡이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잘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엔 핸디캡 파킹랏이란 침범해서는 안되는 절대영역으로 인정해주는 철저한 사회적 관습이 자리 잡혔다. 


물론 겁 없이 파킹을 했다가는 벌금 폭탄이 뒤따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럼 이젠 노인들을 위한 파킹 절대영역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시니어 파킹 온리(Senior Parking Only)시대가 열려야 한다.


물론 그러기 이전에 노인들 자신이 대중교통을 즐길 줄 아는 ‘그린 시니어’로 변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어르신들의 행복한 추억하나는 바로 서울 지하철이다. 


노인 대부분은 공짜에다 노인 우대석도 마련되어 있고 더구나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니 다리 근력운동도 할 수 있어 지하철은 좋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고 추억한다. 


마이카 시대를 청산하고 그런 대중교통이 주는 행복을 즐기는 모험을 노인들은 마다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운전환경에 마음을 써주는 복지사회로서의 체면을 세워가자는 말이다. 


흔히 ‘아이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 ‘학생운전(Student Driver)’이란 범퍼 스티커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 ‘시니어 드라이버(Senior Driver)’란 스티커는 왜 없냐고? 


그래야 프리웨이 주행 시 35마일로 버걱댄다 할지라도 성질 급한 젊은 것들이 그냥 비켜갈 것 아닌가?


일부 교회에서도 노인주차 공간을 따로 마련해 놓고 표지판을 붙여놓은 것을 보았다. 


내가 70~80대 노인운전자라면 거리가 멀어도 그런 교회를 찾아가리라. 


교회 주차장에서부터 기분이 좋아 질 테니까. . .


교회 파킹랏에 가보면 새 신자를 환영한다며 큼지막한 주차 말뚝을 세워놓은 걸 여러번 보았다. 


새 신자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교회 노인운전자에게도 새신자 말뚝처럼 노인전용 파킹 말뚝을 박아 주면 얼마나 자상하고 너그러워 보일까? 


그것도 새신자만 좋다고 설쳐대는 교회성장주의의 단면인가? 


교회부터 노인운전자를 살펴드리자.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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