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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엔 아직도 동서독을 막아놓고 있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거기엔 SNS를 타고 이미 유명해진 ‘더티 키스’란 제목의 벽화가 그려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동독수상 호네커가 뜨겁게 키스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0월 베를린에 들렀을 때 그 벽화를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시가 너무 어두워서 또렷하게 벽화감상(?)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아니 독일이 왜 이래? 왜 이리 어두운 거야? 깜짝 놀랐다. 


거리의 가로등도 어둠침침, 철시한 상가는 깜깜한 암흑, 아파트나 가정집은 호롱불 수준의 희미한 불빛만 보였다.


알고 보니 전기절약이 목적이었다. 


집에서도 사람이 움직이는 곳만 전기 불을 켜고 다른 곳은 모두 불을 끈다. 


가로등도 제일 약한 빛으로 다 바꿔놔서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 


국가부도사태에 몰리게 되자 그리스 총리가 독일의 메르켈 수상을 찾아와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EU 최고 부자의 나라가 독일이다. 


그런 나라의 수도에서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도시 전체가 어둠 컴컴하다?


이유는 있었다.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보며 독일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2011년 후쿠시마 핵 사고가 발생하자 17개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8개를 가차없이 폐쇄했다. 


앞으로 2020년까지 모든 원전을 없앤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 게 독일이다.


그럼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겨 전기를 수입해 오나? 그건 아니다.  이웃나라에서 전기를 꾸어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전기를 덜 쓰고 불편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지런히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불란서 사람들은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촌스러운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독일 사람들은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불안한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직도 히틀러와 나치즘의 트라우마가 독일 역사의 깊은 흉터로 남아있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이 나라는 ‘핵발전소는 더 이상 안된다’ 생각하면 일사불란하게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국민적 저력이 농축되어 있는 나라로 보인다.


지금 파리에서는 ‘기후변화총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총회는 앞으로 녹색지구의 미래를 결정하고 자꾸 열 받고 있는 지구를 식힐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회의라고 할 수 있다. 


150개국 정상들이 모였고 실무자 2만5천여명이 지난 11월 30일부터 2주간 동안 머리를 맞대는 회의이니 그 중요성이 대충 짐작이 간다.


프랑스는 ‘파리 테러’로 지금 국상을 만난 셈이다. 테러직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오바마를 찾아가고 모스크바로 푸틴을 찾아가서 이슬람 국가(IS)란 테러집단의 씨를 말려야 된다고 협조를 구하고 다녔다. 


IS와 전쟁을 선포한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올랑드는 파리에서 열리는 이번 기후변화 총회를 연기하거나 다른 데로 양보하지 않았다. 


IS와의 전쟁과 함께 세계 제2대 전쟁이 기후변화와의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올랑드가 대세다. 


그가 ‘세계 대통령’처럼 보인다. 


오바마는 초라한 들러리나 서고 있는 모양새다. 


IS에 대해서도 지상군 파병은 절대 없다며 우물쭈물, 기후변화 총회에서도 별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그러나 기후변화에 우물쭈물 하다가는 지구온난화의 부메랑을 맞아 가장 큰 재앙에 직면하게 될 최대 당사국이 미국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겠다고 교토 의정서란 게 발효된 적이 있다. 그건 실패작이었다. 


우선 선진국만 서명했다. 그러나 서명만 해 놓고 실천은 빵이었다. 미국부터 공화당 주도의 상원에서 보기 좋게 비준을 거부당해 퇴자를 맞고 말았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다가는 산업이 망한다고 주장하는 부자들의 핏대에 부자들 눈칫밥 먹고 사는 공화당이 선뜻 찬성하고 나설 리가 없었다. 


소련이나, 캐나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파리 회의의 목적은 ‘지구온도 2도’ 상승억제가 목표라고 한다. 

선진국이 아니라 개도국들도 다 모였다. 


문제는 지구촌 거의 모든 국가들에게 법적 구속력을 갖고 적용될 ‘조약’ 수준의 약속을 하고 헤어지느냐에 있다. 


말랑말랑한 말로 협약이나 주고받고 끝나면 제2의 교토 의정서 꼴이 된다. 


안 지키면 엄벌을 받는 강력한 채찍을 마련해야 그나마 신음하고 있는 지구가 살아날지 모르겠다.

이번 총회에서 실효성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시위가 세계 175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강산을 말라붙은 저주의 땅으로 착취해 온 우리 모두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번 회의를 지켜봐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조금 컴컴한 세상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독일국민들의 희생과 단결정신을 보라. 


지구온난화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면 지구촌의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나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덜 쓰고 덜 타고 덜 욕심을 부려야 지구가 산다.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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