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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감독 이장호 씨가 2년 전 LA에 왔을 때 자기는 소설 ‘침묵’과 같은 작품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때 처음  ‘침묵’이란 소설을 소개받은 셈이다. 


그 침묵이 이장호 감독이 아니라  마틴 스코세이지란 감독에 의해 지난해 영화화 되어 시방 미국에서 상영 중이다.


별로 관심없는 주제 때문인지 상영관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찾아갔다. 


‘쉰들러스 리스트’로 일약 세계적인 배우가 된 니암 리슨이 나온대서 기대는 더욱 컸다.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고통의 순간에 신은 어디 있는가? 라고 묻는다. 


17세기 일본 기독교 선교 당시의 박해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선교를 하던 포르투칼의 신부가 배교했다는 사실이 교황청에 알려지면서 시작된다. 


일본 선교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금 파송되는 신부들은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이었고 그 중 하나 로드리고 신부는 열렬한 페레이라의 수제자였다. 


로드리고 역을 맡은 이는 배우 앤드류 가필드였다.


이들 두 명의 신부는 예수회 소속이다. 예수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속한 수도회이기도 하다. 

예수회는 1517년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의 위기를 배경으로 탄생됐다. 


1540년 군인 출신 수도사 이그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가톨릭의 반성과 혁신을 주장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일하는 예수회 회원들은 유럽 대륙 외에도 중국, 중남미 등 해외 선교에 힘쓸 때였다.


일본에 도착한 로드리고와 가르페 신부는 아직도 잔존하고 있던 신도들의 도움으로 신도들에게 성례성사를 베풀고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페레이라 신부의 행적을 찾아봤으나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 배교한 경험이 있는 일본 청년 기치지로의 밀고로 두 신부는 일본 신자들과 붙잡히게 된다. 


로드리고는 가차없이 참수당하는 가르페 신부와 일본 신자들의 순교현장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일본관리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 돌판을 발로 밟게 함으로 신자들을 구별하거나 배교를 유도했는데 그 돌판에 새겨진 성화를 밟기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신도들의 순교적인 신앙에 로드리고는 큰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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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때문에 그리고 신부를 위하여 참혹하게 죽어가는 신도들을 괴롭게 바라보면서 컴컴한 감옥의 벽에 손가락이 문드러질 정도로 laudate eum(주님을 찬양하라)라는 말을 새겨보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무엇 하나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괴로워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스승 페레이라는 배교자가 되어 승녀로 살고 있는 것은 더 큰 충격이었다. 

이윽고 저 불쌍한 신도들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 역시 배교했을 것이라는 페레이라 신부의 말을 듣고 로드리고는 마침내 성화 돌판을 밟기로 결심한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 한다”는 주님의 음성이 내면을 통해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신도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했지만 로드리고가 배교한다면 신도들은 순교를 면할 수 있게 해줬다.


일본은 로드리고에게 순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배교였다. 


페레이라 신부에게 원했던 것처럼 로드리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스승을 따라 로드리고는 배교자가 되었다. 


성화 돌판을 발로 밟은 것이다. 


그는 ‘배교자’라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 자신을 밀고했던 기치지로가 또 찾아와 고해를 요구했다. 


기치지로는 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계속해서 예수를 부인하고 또 로드리고를 배반하고 또 와서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는 인물, 기계적으로 회개하고 기계적으로 죄를 범하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로드리고는 끝내 그 고해성사를 거부했다.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정신에 있는 것이지 맹목적인 교리나 상징, 제도에 대한 순종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란 걸 말하고 싶었던 같다.


이 영화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품가운데 기독교에 관련된 것들이 있는지를 색출해 내는 항구의 밀무역 색출자로 일하던 로드리고가 결국 쓸쓸하게 죽어가자 불교식으로 화장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화장되는 불 꽃 속에서 그의 가슴 옷자락에 숨어있던 십자가, 언젠가 순교 직전 한 일본신도가 그에게 건네준 아주 작은 십자가도 그와 함께활활 불타고 있었다.

영화 ‘침묵’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하나님은 배교자 로드리고를 정말 버리신 것일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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