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길.JPG 

한용길 CBS 사장



"용길이 형, 우리집에 와줄 수 있어요?"


2014년 2월 초순, CBS 창사 50주년 기념사업단의 공연기획팀장으로 일할 때였다.

경희대 영문학과 1년 후배인 KBS의 최연택 기자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오랜기간 연락이 없었던 연택이가 느닷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그간의 안부를  전하는데, 지금 췌장암 말기라며 자기 집에 와 주었으면 하고 전화를 건 것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기고 착한성품의 최연택 기자였다.


그가 췌장암 말기라니!


친척 어르신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탓에 병의 징후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소리 소문없이 몸속에 있다가 말기가 되서야 증상을 드러내는 췌장암은, 빠르게 죽음으로 몰고 가서 암 중에 생존률이 가장 낮다고 알려져 있었다.


최기자는 대학시절에 유난히 나를 따랐고,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졸업 후 KBS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후에 기자로 전직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서로 바쁜 탓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내게 전화를 건 연택이의 급작스러운 비보에 나는 당황스럽고 믿겨지지 않았다.

한동안 참담한 심정이 진정되지 않은 채 가슴만 두근거렸다.


연택이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아주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얼마전까지 아주 건강하고 별일이 없었는데,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서 건강검진하다가 그만 췌장암 말기 상태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췌장암은 아무런 증세를 느끼지 못하다 발견되는 순간 이미 말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도 했다.

담당 의사는 그에게 췌장암 말기라고 통보하며, 앞으로 삼 개월 밖에 살수 없으니 두가지를 해보라고 조언했다.


첫 번째는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

그래서 연택이는 아내와 함께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두번째 조언은,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간혹 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친 사람이 있다고 하니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기적을 바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택이의 가족은 오랜 기간 불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주변에 기독교 신자가 없다고 했다.


마침 대학시절에 친하게 지낸 내가 기독교 방송국의 PD라는 것을 떠올렸고 나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치려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뻑뻑하게 차올랐다.


내가 어떻게 암 말기 환자인 그에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고, 또 어떻게 그 병을 고치게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후배에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또 어떻게 기도해야 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마음만 바쁘고 머릿속이 온통 하얘진 나는 연택이에게 '오늘은 바쁘니 이틀 뒤인 토요일에 방문하겠다' 고 약속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당시 나는 그해 4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릴 <박종호 The Classic 콘서트>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데 왠지 연택이를 당장 찾아가서 그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암말기 환자라는 연택이의 말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조급해졌고, 내가 다니는 부천 밀알교회의 담임이고 유년시절부터 멘토이자 선생님인 박기서 목사님께 같이 가자고 부탁하려고 했다.

전화의 다이얼을 막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광야를.JPG


바로 그때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용길아, 무슨일이 있느냐? 하나님께서 너에게 급히 전화하라는 사인을 주셨다"

정말 기가 막힌 순간이었다.


내가  목사님께 전화를 걸려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으로 하여금 내게 전화를 걸게 하시다니, 그것도 1초의 오차도 없이...


목사님께 최연택 기자의 사정을 전했더니 당장 심방을  하자고 하셨다.

곧바로 나는 CBS가 있는 목동을 출발하여 부천에서 박기서 목사님을 모시고 연택이가 있는 일산으로 차를 몰았다.


연택이는 전화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달려온 나를 반갑게 맞이했고, 무엇보다 기독교신앙에 의지하고 싶었던 그를 위해 생면부지의 목사님이 함께 심방 온 사실을 무척 고마워 했다.


<계속>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