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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잠시 후에 편성국장 취임사를 발표해야하는데, 편성국장 취임사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원고를 고치고 고친 끝에 그럴듯한 취임사가 완성되었다.


더불어 앞으로 편성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그림을 좀 더 설명하면 국장 취임사로 충분할 것 같았다.


취임사에 대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을때였다.


짐중해서 취임사를 읽다가 불현듯 최연택 기자가 생각났다.


그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나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았던 것이 바로 CBS 방송이지 않았던가.


'그렇지, 하나님께서 연택이 얘기를 하라고 하시는 구나'


편성국장 취임식이 있던 날, 나는 애써 작성한 취임사를 접고 편성국 직원들에게 취임사 대신 최연택 가자의 이야기를 간증하면서 CBS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하였다.


"여러분, CBS가 어떤 곳입니까? 

KBS 기자로 근무하던 제 후배는 췌장암으로 죽어가면서 마지막까지 CBS방송을 보았습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CBS방송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CBS에서 방송을 제작하는 여러분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 입니다."


나는 편성국 직원들이 자신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소명감을 갖기를 원했다.


통상 CBS의 PD와 아나운서는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재원들인데, 그들이 CBS 방송 본연의 의미를 잘  안다면 자신의 역할에 더 충실할 거라고 생각했다.


국장으로서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다 한가지였다.


'생명을 살리는 방송'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


뉴스를 하던, 시사 프로그램을 하던, 음악 프로그램을 하던간에 CBS 방송의 궁극적인 목적은 방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전달하는 일이 되어야 했다.


편성국장의 업무중에는 부장회의를 진행하는 일이 있었다.


매일 방송의 제작 방향을 놓고 제작부장, FM부장, 편성부장, 아나운서 부장 등 각 부서장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 것이다.


나도 FM부장 시절에 이미 겪었던 회의였는데, 부장 회의는 으레 딱딱하고 경직되기 마련이었다.

앞으로의 회의가 그대로 답습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변화가 필요했다.


"여러분, 오늘부터 부장회의를 할 때마다 매일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회의 첫날에 이렇게 말하자 다들 놀라는 기색이었다.


짐작했던 반응이었는데, 부장회의 시작 전에 기도하는 일은 처음있는 일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들 어색해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


부장이라고 하지만 대표 기도를 한 적이 없었던 그들에게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편성국장이 거룩한 척 쇼를 한다는 뒷얘기가 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괘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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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끊이지 않는 평성국을 만드는 것이 나의 첫번째 과제였다.


부장 4명이 하루씩 맡아 기도하고 남은 하루는 내가 기도하면 일주일의 기도 분량이 모두 채워졌다.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하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달라졌다.


의례적인 대표기도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부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고충을 잘 아는 부장들의 기도제목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해서 감동적이었다.


"우리 부서의 최OO 아나운서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부서에는 믿음 생활을 잘 못하는 직원들이 여럿 있습니다. 예수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길 기도해주세요"


"우리 목표로 하는 일들이 있는데 재원이 부족합니다.

필요한 재원이 채워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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