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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아직은 아이들과 함께 할수 있는 것이 식탁에서 밥 먹는게 전부였지만,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만 같았다.


이제 무엇을 함께 해야 할지 생각하는게 내게 주어진 숙제였지만, 그 숙제를 내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되었다.


바로 그날 저녁, 식사를  하고 나자 아들녀석이 바짝 다가와서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빠, 내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해요."

"그래, 좋지."


아파트 맞은 편에 지원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나는 운동장에서 아들과 둘이 축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이거하자 저거 하자고 졸라댔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즐거웠다. 

아이들의 아빠라는게 뿌듯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장 큰 축복이라고 여겨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면 기쁨이 샘솟았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느라고 끙끙대다가도 집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그날의 곤고함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마중하는 아이들을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이의 뺨을 손으로 감싸안으면 이보다 더큰 기쁨이 있을까 싶었다.


그동안 방송일을 하면서  느꼈던 일의 보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책임감 또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멈추지않도록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아니면 이 아이들을 누가 지켜줄까?'


그러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오랜세월, 동양철학을 공부한 아버지는 주로 글 쓰는 일을 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돈이 없었던 집안 사정이어서 어려움이 많았고 불편한 일 투성이였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쩔쩔 맸으리라고 짐작한다.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내가 돈을 잘 벌지 못하게 되자,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하고 어머니의 어려움도헤아릴 수 있었다. 

이제야 나는 아버지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간혹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아빠 너무 힘들어!', '아빠가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보면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도  '광야'가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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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어려움을 지혜와 명철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잘 통과하려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오직 주님 한분만을 붙잡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목도하며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아빠, 많이 힘드시죠?"


그말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아들 지원이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원해 온 것이다.

이처럼 기특하고 착한 아이를 내게 보내주신 주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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