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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른들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미국의 청소년들을 놓고 흔히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핀잔을 주고 지나치게 쾌락주의에 빠져들어 ‘저것들이 과연 이 나라를 이끌어 갈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노려볼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천만에 말씀이다.


청소년들이 되레 어른들을 놓고 ‘이 어른들이 지금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가는 거야’라고 격분하면서 자기들이 나서겠다고 덤비는 눈치다. 최근 어른들이 총기 규제에 실패하고 있으니 자신들이 나서겠다고 학교수업도 빠지면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 못해 장엄하게 느껴진다. 지난주 전국에서 실시된 고교생들의 총기규제 시위를 놓고 하는 말이다.


지난 2월 고교생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 교내 총격 참사가 있은 지 한 달째인 지난 14일 미 전역에서는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동맹휴업(워크아웃) 행진이 펼쳐졌다. 학생들은 플로리다 참사의 희생자 17명을 기리는 의미에서 최소 17분간 학교 교실 밖으로 나와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모든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 총기 판매 전 전력 조회 의무화, 공격성을 보인 총기 소지자에 대해 법원이 총기를 회수할 수 있게 하는 법안 등 강력한 총기 규제 조치를 요구하고나왔다.


금년 종려주일을 하루 앞둔 3월 24일 ''우리 목숨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란 거대한 평화행진이 워싱턴은 물론 미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모두 청소년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사명선언문에서 “우리는 더 이상 단 한명의 어린이, 단 한명의 교사라도 총에 의해 죽게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여기에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평화 행진을 위해 50만 달러, 오프라 윈프리도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고 거기다 레이디 가가, 저스틴 비버 등 거물급 스타들이 SNS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런 어른들만 있다면야 금새 미국에서 총기가 자취를 감출 것 같지만 싹이 노란 어른들은 워싱턴 정가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이다.


총기가 많아져야 나라가 흥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전미총기협회(NRA)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회원만도 5백만 명이다. 


연간예산은 2억5천만 달러. . 입이 딱 벌어진다. 2016년 정치로비를 위해 이들이 쓴 돈이 약 4백만 달러.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위해서도 3천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니 정계에 진출하는 애송이든 원로든 총기협회에 가서 “내가 현직에 있는 동안 NRA에 반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충성맹세를 한다고 하니 과연 미국 정치계의 왕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총기협회와 맞짱 뜨겠다고 나온 게 이 나라 청소년들이 아닌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총기협회 돈에 굴복하고 있으니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다고 동맹휴업까지 들고 나선 젊은이들은 정말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로비그룹과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는 정치인들을 향해 5개의 물맷돌을 들고 나선 다윗이 될 수 있을까?


대형총기사고로 나라가 떠들썩해지면 언론에서 떠들어댄다. 

그러나 NRA와 총기 옹호 정치인들은 그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관심이 사그라들때 까지 입법을 질질 끄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기 생각이 어쩌고저쩌고 TV에 나와서 핵심 없는 말들을 지껄여 대고 때로는 기도까지 하고, 침묵의 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능청을 떤다. 조기를 걸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총기규제의 목소리는 조용히 사그라들고 입법 노력은 어느새 저만치 뒤로 밀려 결국은 총기규제? 그건 또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가 한 두번 속았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청소년들이 저렇게 일어나고 있다. 마치 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가처럼 미 전국의 고등학교에 총기반대 외침이 불꽃처럼 번져가고 있다.

총으로 세운 나라, 총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망하는 미국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교실을 박차고 나오는 저 젊은이들을 어른들은 구경만 할 참인가?


오는 6월 중간 선거를 통해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많은 한인 정치인들이 기금모금을 하면서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당신의 총기 규제 입장이 무엇이냐고?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망해서는 안 되는’ 이 나라를 위해 가장 시급한 질문 아닌가?


한인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구의 연방, 지방 상하원 후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총기협회가 우리를 우습게 볼 지 몰라도 우리에게 있는 것은 총기규제를 찬성하는 이들을 뽑아 의회로 보낼 수 있는 ‘위대한 한 표’가 있지 않은가? 그럼 교회는? 예배드리는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훈련된 총잡이를 뽑아 예배당에 보초를 세우라는 총기옹호론자들의 말에 솔깃하고 있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라면서 총기규제를 말장난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말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정헌법 제2조를 현실적으로 손질하여 총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십계명의 제6계명을 어기는 주범은 총이다. 총 없는 세상,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 다른 사람의 생명도 내 생명처럼 소중하게 존중하는 세상, 한 생명의 가치를 천하 그 이상으로 평가하셨던 예수님이 꿈꾸셨던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려면 총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어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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