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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음악 방송에서 선곡의 원칙 중에 'Start bright, finish strong' 라는 말이 있다.


경쾌하고 밝은 곡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마무리는 강한 곡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남긴다는 의미이다.


나는 방송을 하면서 이원칙을 구현하려고 했다.


특별히 첫 곡은 중요하다.


그날 방송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알리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음악방송에서 음악이 그날그날 전할 메시지를 대신하기에, 나는 오늘 청취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할까? 무슨 메시지를 전할까? 이런저런 기대감을 안고 음악을 선곡했다.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좋은 음악은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였다.


<12시에 만납시다>를 진행하는 동안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려고 했는데, 그 무렵에 안치환의 '내가 만일' 과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의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거의 매일 청취자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 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_안치환의 <내가 만일> 노랫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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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들려줄 때마다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고, 청취자들고 그러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청취자로부터 왜 매일 같은 노래를 들려주냐면서 따지는 내용의 팩스가 전송되었다.


"PD님, 어떡하죠?"

작가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방송에서 청취자들에게 물어보지, 뭐."


나는 방송에서 이 팩스의 내용을 소개하며 청취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청취자들 대부분은 이 노래가 좋다는 의견이었고, 매일 더 틀어 달라는 쪽이 우세했다.

좋은 음악을 청취자들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방송이 나가는 시간은 내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긴장되는 시간임에도 분명했다.


매일 진행하다 보니 매일 승부수를 띄워야 했고, 생방송이니 만큼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어서 이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방송에 있어 DJ와의 호흡도 중요했다.


PD의 생각과 철학을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DJ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보통 PD가 신참이고 DJ가 고참이면 문제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암암리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래도 대개 DJ들이 PD를 믿고 따라와 주는 편이다.


PD시절,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 DJ들과 방송할 때가 많았다.


나는  연출에 대한 나만의 철학과 스타일을 존중받기를 원했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라고 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카리스마있게 밀고 나가고자 해서 선배들과의 사이를 껄끄럽게 한 적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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