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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총격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테러가 올랜도에서 발생했다. 


이번 사건의 키워드 셋을 뽑으라면 역시 IS(Islamic State), 총기, 그리고 게이(gay)란 말이다.


IS는 끔찍한 테러를 자행한 후 언제나 자기네가 저지른 행위라고 세계를 향해 떠든다.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잔인한 짓이다. 


사람을 죽이고 만세 부르는 야민인들이다. 중동의 사막에서 흑두건을 쓰고 미친 듯이 내 달리는 IS가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미국 영주권자, 시민권자들이 평범한 시민의 가면을 쓰고 버젓이 우리 곁에 서 있는 IS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테러범 오마르 마틴도 합법적으로 총을 손에 쥐고 일하는 한 직장의 시큐리티 가드였다. 


자생적 테러리스트! 


도대체 이들을 어떻게 식별하여 이들의 무차별 자살 테러를 예방할 수 있을까? 아마 FBI나 네이비 실(navy SEAL) 요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도 어림없는 헛수고일 가능성이 높다.


총기문제에 관해서는 사건 당일 회견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말해주는 듯했다. 그의 표정은 피곤하고 우울했다. 


대량학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앵무새처럼 똑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이젠 신물이 난 표정이었다. 그냥 의례적인 몇 마디로 회견을 끝내 버렸다. 이해가 간다.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샌버나디노 테러 사건에 이르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강변해 왔다.


총기 규제법안통과를 의회에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의회는 번번이 퇴자를 놨다. 


공화당을 업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총기규제란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올랜도가 있는 플로리다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루비오는 올랜도 테러에도 불구하고 총기규제가 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떨어진 사람이다. 도날드 트럼프도 이번 테러의 배경을 무슬림 쪽으로 몰고 가면서 총기 문제는 비켜가고 있다. 총기 규제? 그건 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드센 로비가 존재하는 한 날 샌 이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테러란 점이다. 게이나 레스비언들을 향해 이렇게 총질을 해 댄 적은 역사상 없었다. 


범인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오마르가 남자 둘이 껴안고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분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마 동성애자들을 향한 증오


범죄로 몰고 가려는 의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아버지의 말만 들으면 게이에 대한 혐오감이 결국 게이 나이트클럽을 덮쳐 49명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의 생명도 끊었다는 말이 된다.


혐오감이란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말한다. 남자끼리 키스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폭력이나 살인을 불러오는 혐오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신을 싫어한다. 프로 농구 NBA 선수들의 문신은 특히 유별나다. 


르브론 제임스의 문신은 싫어하지만 농구선수로서는 그를 좋아한다. 현재 NBA의 대들보인 셈이다. 문신은 그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해해 주면 된다.


난 동성애자들도 싫어한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 낭만시인 바이런, 유명 배우 록 허드슨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동성애자들이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유명 가수 엘튼 존은 다 알려진 게이다. 


그가 게이인 것과 그의 음악을 별개로 보면 특별히 그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


대낮 TV토크쇼의 여왕 ‘엘렌’은 레즈비언 코미디언이다. 에미상을 13번이나 받았다. 결코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만 그녀의 쇼를 시청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토크쇼 1회당 평균 시청자가 약 4백만 명이라고 하니 그의 성적 취향과 관계없는 놀라운 인기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 주말 웨스트할리웃에서는 LGBT 그룹이 주최하는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렸다. 그 차림새와 변장한 모습을 보면 어느 땐 구역질이 날 정도다. 


그들에게서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우리가 격리될 수 없다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 주는 공감능력을 키워가는 수 밖에 없다. 


신앙적으로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커뮤니티의 한 구성원으로 살기위해선 우리 커뮤니티의 동성애자들을 덮어 놓고 미워하고 증오하는일이 최선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어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았던 사마리아를 관통하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향하셨던 예수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혐오의 대상이었던 세리 마태나 삭개오에게 다가가셨던 예수님, 그분은 이 세상의 그 잡다한 경계와 차별을 허물기 위해 오신 분이셨다.


그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게이, 레즈비언에게도 마음으로 다가서는 넉넉한 씀씀이의 이해와 관용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올랜도 테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을 동성애커뮤니티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하자. 


혐오스럽다고 총질을 해 대는 것은 결코 예수님의 길이 아니다. 이웃사랑의 범주 밖으로 성소수자들을 내 모는 오만불손도 마찬가지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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