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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문예부흥 화가로 달달 외우던 이름이 미켈란젤로다.


그는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으로 팔방미인이었다.
그 시대 이태리 투스카나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대개 그랬다.


말만 들어도 유명한 그의 작품가운데 하나는 우선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란 조각이다.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이름의 영화가 제작되어 칸느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그 영화 제목과 같다.


성모 마리아가 고난 중에 사망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있는 비통한 모습의 조각이다.
베드로 성당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서서 구경하는 조각이다.


또 하나는 ‘다비드’란 조각이다.


구약의 다윗을 르네상스의 안목으로 창조해낸 걸작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얼짱, 몸짱이다.


목동 주제에 다윗이 저렇게 잘 생긴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고?


그런 의구심이 들긴 해도 예술은 예술이니까 트집은 금물로 해 두자.
또 하나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최후의 심판’이다.


위 두 개의 걸작은 모두 조각이다.


밀가룩 반죽 같은 회반죽을 벽에다가 발라서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인데 딱딱하게 굳으면 수명도 길고 색이 바래면서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이 프레스코 그림이다.


그런데 시스티나 성당을 들어가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그 높은 천장에다 어떻게 미켈란젤로는 저 수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목을 90도 각도로 꺾어서 한참을 구경하다보면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의 그 높은 천정에다 저렇게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니!


그리고 인류 회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저렇게 높은 천장에 남겨 놓을 수 있었다니 놀라움과 탄성을 감출 수가 없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아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모두 성경의 내용들이다.
조각가가 왜 천장에 매달려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


당시 교황 율리오 2세는 교황의 절대 권력을 서양 군주들에게 서서히 빼앗기는 권력 누수 현상을 보이자 뭔가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베드로 성당 보수 작업을 계획했다고 한다.


브라만테란 높은 벼슬을 가진 예술가에게 이를 하명하자 그는 재빨리 베드로 성당이 아니라 시스티나 성당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제안했고 적임자는 바로 미켈란젤로라고 추천했다는 것.


4년여 동안 고생고생 끝에 사다리차 같은 비계에 몸을 의지하여 그림을 그리다 보니 미켈란젤로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비계에서 자고 먹고 하면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근육통, 관절염은 당연지사고 누워서 작업을 하다 보니 눈으로 수없이 물감이 떨어져 장님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불쌍한 미켈란젤로!


그런데 그의 예술혼을 불태워 그린 천장화가 르네상스 회화의 최고봉을 이루는 걸작으로 후에 평가를 받긴 했지만 개봉박두에 맞춰 교황에게 선보인 순간 이건 완전 천장에서 벌어진 나체쇼가 아닌가?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 웅크렸던 인간 육체의 찬미란 뜻에서 우선 ‘옷을 벗고 보자’였지만 그때 사회분위기로 보면 완전 포르노 수준이었다.


그래서 후세의 화가들은 덧칠을 해가며 미켈란젤로가 벗겨 놓은 육체에

겨우겨우 옷을 입혀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심판’에는 인간의 육체가 취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포즈가 종합 세트로 자리 잡고 있다하여 더욱 유명한 ‘명품’이라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하루 관람객은 평균 2만 명이라고 한다.


그럼 수세기에 걸쳐 그 천문학적 숫자의 사람들에게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외에도 ‘천지창조’ 등 성경의 진리를 그림으로 풀어준 ‘그림 선교사’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 미켈란젤로의 그림 밑에서 이번 주부터 콘클라베가 열리고 있다.


언제 이 성당의 굴뚝에서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자가 결정되었다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까?


미켈란젤로를 생각하다 떠오르는 것은 옛날 옛날 한 옛날에도 그림과 교회는 그토록 가까운 관계였거늘 지금 예배당에는 왜 그림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리스도나 마리아, 사도들의 조각상을 거룩하게 여겨 숭배하는 성상숭배가 한때 유행하자 8세기에 들어 성상숭배 금지 명령이 내려진 역사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성화를 배척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교회 음악과 CCM이 발전해 온 역사와 비교해 보면 기독교 미술은 너무 초라하다.


홀대를 받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들의 교회당에 벽은 얼마나 많고 친교실은 또 얼마나 넓은가?
미켈란젤로를 환생시킬 수도 없고 누구 성화 그리는 사람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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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병, 관절염 마다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그림으로 선포할 그림 선교사. . . .
어쩌면 미켈란젤로와 통하는 그림 선교사도 환영받는 시대가 와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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