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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세계화의 덫](한스 피터 마르틴, 영림카디널, 2003)와 [세계는 평평하다](토머스 프리드먼, 창해, 2006)라는 두 책의 공통점은 세계화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으로 보든 간에 세계화가 세상을 천국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가 평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도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평평하다]는 인간이 보다 많은 일을 세계적인 협력 하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세계화의 혜택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는 평평하다]는 이를 따라야 하고, 각 개인은 절대적인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러나 [세계화의 덫]은 국가적인 정책을 제시합니다. 우선 국제 자본의 무한한 이동에 세금을 매겨야한다고 합니다.


그는 터보자본주의가 불행한 세계화로 유도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를 카지노화한 자본에 기업 경영자, 정치가들이 저항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불행한 세계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현상을 구경만 하거나 따라가기에 급급하지 말고 뚜렷한 역할을 해야 하며 실제로 결정적인 부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세계화의 더 큰 불균형과 격차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가정이 가정으로서의 기능을 회복시키므로 인간 개인으로서의 소중함과 존엄함을 상기시키고 가꿔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자체가 교회로서의 기능을 다하도록 회복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4가지 인간관계가 존재합니다. 즉 교우관계는 다음의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먼저 동행하는 관계입니다.

 

그냥 우연히 같은 버스에 오르듯 같은 교회에 다니는 상태입니다.
만나거나 헤어질 때 가볍게 인사하고 가벼운 대화정도 나누며 같이 예배드리는 정도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갈등만 생기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동업하는 관계입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계속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갈등이 생겨도 극복합니다.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해가 나면 관계는 바로 깨집니다.


세 번째는 동반하는 관계입니다.


서로에게 좋은 마음을 품고 같은 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손해가 생겨도 극복합니다. 같은 편이며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심지어 옳고 그름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깨지거나 사라지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립니다.
사실 좋을 때는 좋지만 교우 간에 이러한 관계에 있을 때 편을 나눠 분쟁하고 결국 교회가 갈라지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싫거나 좋다는 감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동역하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갈등이 생기고 손해가 나며 감정이 상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위해서는 그러한 것들을 당연히 감수해야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교회에서 무엇보다도 서로 간에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선결되지 않으면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으로 허송세월만 하고 세상을 이끌며 도움을 주기는커녕 기독교에 해만 끼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어디에 속하는지 점검해 보고 모두가 좋은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세우고 세상에 아름답게 봉사하는 날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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