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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교회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마련해야할 네 번째 요건은 희생과 헌신의 정신입니다. 싫고 좋음이란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헌신이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희생이 리더십의 근본 조건입니다.


Vanishing Twin(쌍둥이 소실)이란 말이 있습니다. 임신 초기에 쌍생아 중 하나가 모체 속에서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임신 8∼10주 정도면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의 상태를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신 10∼15주 사이에 두 아기 중 하나의 심장이 멈추고 태반이 쪼그라들어 자연 소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연적인 유산과 구별해서 쌍둥이소실(vanishing twins)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심리학적으로는 경쟁자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원초적인 공포를 의미합니다.


다태임신(Multiple gestation)이 될 확률은 7.6%이고, 이 중에서 Vanishing twin이 85.6%가 발생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임산부 중 6.8%가 베니싱트윈(Vanishing twin)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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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가 생겨서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사라질 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베니싱트윈(Vanishing twin)이 살아남은 태아에게 흡수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베니싱트윈(Vanishing twin)이 산모에게 흡수되는 것입니다. 사회생리학 연구에 의하면, 첫 번째인 경우에는 살아남은 태아가 다중 인격자, 동성연애자 등이 될 수 있고, 두 번째의 경우에는 살아남은 태아가 파괴적이고, 자긍심이 낮고, 외로움이 많고, 경쟁을 싫어하며, 때때로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정서적 결함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산모의 영양 상태나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자궁의 환경이 이상적이지 않을 때 하나가 다른 하나와 경쟁해서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만 알았던 엄마의 자궁속이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의 장소라는 겁니다.


양영순이란 만화가의 베니싱 트윈이란 만화에 보면, 쌍둥이 중 하나가 뱃속에서 엄마와 아빠의 가난한 현실을 알고 스스로 탯줄을 끊고 베니싱 트윈이 됩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소실이 아니라 희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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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사회에 살다가 사라짐은 어차피 정해진 운명입니다. 기한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의 무대 저편으로의 사라짐은 패배나 소멸이 아니고 희생이어야 합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존재가 가장 유능하게 사는 비결은 희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은 아직도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희생이 없는 사회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동일합니다. 만일 가정이 행복하다면 누군가 희생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억압이나 강제에 의하여 희생한다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고 착취가 됩니다. 희생은 곧 사랑과 동의어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곧 희생한다는 것을 뜻하며 성경을 안다는 것은 곧 사랑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능력 중에 가장 큰 능력은 바로 희생입니다. 그리고 희생할 줄 안다면 남녀노소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능력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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