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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사실상 세계화의 그 불편함은 어느 계층에 속하던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세계화의 덫]을 보면 이러한 예를 설명해주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2가지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세계화의 불편함을 하나는 월급쟁이 입장에서 묘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1) 서른 살의 독일인 엔지니어인 페터 티슐러씨는 1996년 6월의 금요일, 출장지인 비인에서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오전에 베를린에서 업무를 보고, 저녁에 본 근교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있을 것이다.
주말에는 스페인으로 가야하고, 화요일에는 미국으로 가야만 한다.


그에게 비행기를 타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전차를 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는 세계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힘들이는 만큼 보람이 있을까요?”
그는 질문하듯 이야기한다.


월급 8000마르크중 4000마르크는 세금으로 나가고, 가족을 위한 시간은 없다.


그가 몸담고 있는 직장인 특수기계 설비회사 바텐펠트사는 이윤을 크게 올리고 있는 데도 최근에 직원들 중 1/4이 잘려나갔다.


티슐러씨는 이런 즐겁지 않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을 지명했다.


“이주민들과 터키사람들입니다. 또한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우리가 러시아와 제3세계를 위해 거금을 지출하고, 아직까지도 유태인들한테 돈을 지불하는 거죠?

우리나라와 우리의 회사들을 몽땅 팔아치우는 이런 짓은 미친 짓이에요.”


‘풍부한 국제 경험’을 갖춘 사람으로서 그는 선거에서 누구를 찍어야 할 지 잘 알고 있다.
극우 공화주의자들을 “아직 진정한 정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물론 자기가 이런 것을 큰 소리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벌써 많은 시민들은 호신용 무기들을 장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를 결합시켜 주던 공동체적 접착제는 이제 푸석푸석해졌다.


지표면으로 상승하고 있는 정치적 지진은 모든 현대 민주주의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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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일의 최고 경영자중의 한사람인 ‘안톤 슈나이더’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유럽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스스로를 경제적인 세계화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달리 표현하자면, 어느 유럽의 큰 콘체른이 중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 매우 행복해할 것이라고는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기업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법률체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서 모든 합작투자 계약은 최대 30년 동안 유효하고, 그 뒤는 모든 것이 중국으로 귀속된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도대체 이들은 왜 범세계적인 영업활동에 나서는가?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의지와 관계없이 그 것을 해야만 한다. 새 시장을 개척해서 떡고물을 나누어 먹으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슈나이더는 대답한다.


최고 경영자들은 물론 보통사람들까지 잘 알고 있다시피, 두려움이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쩌다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기업 경영자들이 경영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근심걱정을 단순히 감추어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면, 그들은 금방 대단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시대적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보다는 눈감고 도망가려하거나,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단지 수세적으로 머물고자 한다면, 이것은 이미 실패가 예고되어 있는 바와 다름없다.


이와 같이 변화된 세상의 글로벌 플레이어들 역시 오리무중 속에서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은 어려움이나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면 종교성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즉 기독교가 기독교로서의 정체성만 유지해도 사람들은 제 발로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복음이란 말로 요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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