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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성지 순례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3억에서 3억 3천만 명이 매년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이나 '지저스 트레일(Jesus Trail, 나사렛에서 갈릴리까지의 40마일 거리를 나흘에 걷는 도보여행)'에 참여한다는 UN 통계가 나왔다. 

물론 이 통계는 불교나 이슬람 등 타종교의 성지순례도 포함된 숫자다.

먹고 살기는 힘들어 지고 이슬람 국가(IS)의 테러위협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듯한데 성지순례는 늘어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순례자(Pilgrim)란 여행자를 말하지만 특별히 성지를 여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종교는 영적으로 관련된 ‘중요한 장소’가 있다. 예를 들면 그 종교의 창시자가 탄생한 곳이나 사망한 곳, 그가 영적 각성이나 계시를 받은 자리, 경천동지할 기적을 행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부다가 출생하고 성장한 네팔의 룸비니가 그들의 성지다. 

무슬림들은 메카를 순례하는 것이 의무사항이다. 

그래서 때가 되면 죽고살기로 메카를 찾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는 모두 예루살렘이 성지다.

이런 종교적인 성지를 순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문화적 순례도 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많은 팬들과 함께 전설적인 엘비스의 생가가 있는 그레이스 랜드를 방문했다. 

순례라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죽음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아유슈비츠 수용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지금도 예루살렘을 찾아가 통곡의 벽에 손을 얹고 회개 기도를 드린다. 

아브라함 링컨의 남북전쟁하면 게티스버그를 떠올린다. 

그 전쟁터를 찾아가는 것도 순례요, 어네스트 헤밍웨이를 찾아 플로리다 키웨스트를 여행하는 것도 순례라고 할 수 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례하면 그런 문화적 순례보다는 자신의 내면적 성찰의 계기로 삼아 성지여행 때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크리스천 순례는 예수님의 탄생, 수난, 부활과 관련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교부가운데 오리겐이 AD 3세기에 홀리랜드(예수님이 발자취를 남긴 지역) 성지순례를 시작했고 4세기엔 세인트 제롬을 포함한 교부들에 의해 성지순례가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를 역사상 처음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한 황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성지순례에 앞 장 섰던 인물로 유명하고 모든 이들에게 성지순례를 강하게 권장했다고 전해진다.

예루살렘이 아닌 로마에 대한 순례도 시작되었다. 

사도 베드로가 묻혀 있다고 전해진 자리에 지금의 성 베드로 성당이 건축되었으니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의 순례코스다. 

로마에 가면 “로마에도 가야 하리라”라고 말하면서 로마에 대한 짝사랑에 빠진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사도 바울이 참수 당한 곳에 성당이 건축되어 있다. 

사도바울 순교기념교회. 그곳도 성지에 속한다. 

바울의 목이 잘려 바닥에 세 번 굴렀다는 그 순교기념성당에 들어서면 기독교 박해시대의 공포감이 오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로마 카타콤도 빼놓을 수 없는 성지에 속한다.

로마 외에 지금의 터키나 그리스에 있는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기도 한다.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끝까지 보살폈던 에베소나 소아시아 초대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가파도기아, 또는 고린도나 마케도니아도 순례길이다.

그럼 왜 순례인가? 

우선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기위해, 또는 순례를 통해 상한 마음을 치유받기 위해, 또는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을 얻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어떤 영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순례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순례코스가 스페인 북부의 까미노 델 산티아고(Camino del Santiago), 즉 ‘성 야고보의 길’이다. 

야고보는 세배대의 아들이요 사도요한의 형이다. 

영어로는 세인트 제임스, 불어는 생자크로 불리고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라고 부른다. 

야고보는 스페인에 처음 복음을 전한 사도로 알려져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의 유해가 발견된 곳이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 곳을 찾는 순례가 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 남부 국경에서 시작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800Km의 여정, 보통 30여일이 걸리는 순례길이다. 

이 길을 모방하여 제주도의 올레길이 생겨났고 교황으로는 최초로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를 방문하여 세계인들이 폭발적으로 이 길을 따라 순례길에 올랐다. 

내가 걷고 싶은 순례길이 바로 이 길이다.

과연 나는 이 길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는 이 순례길을 밟아볼 수는 있을까?
그러나 구지 순례길이 산티아고 뿐 이겠는가? 

하다못해 시에라 네바다의 존 뮤어 트레일, 아니면 데스밸리의 유채꽃 만발한 사막 길이라도 걸어보자. 

나는 시방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그래서 이번 달에 개봉하는 ‘와일드(Wild)'란 영화는 꼭 구경할 참이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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