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JPG

연말 송년회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송년모임은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회가 대세다. 

일간신문들은 즐비한 동문회 송년모임 광고로 큰 대목을 본다. 

“친구야, 반갑다,” “세월은 흘러도 마음은 청춘!” 대개 그런 미다시를 뽑아 옛날 모교의 사진이나 학교뱃지로 동문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가능하면 많이 모이도록 유인작전을 쓴다.

내 아내는 이번 주 토요일엔 고등학교, 주일 저녁엔 대학 동문 송년회에 참가하기 위해 벌써 마음이 들떠 있다. 

이틀에 두 탕을 뛰게 된 셈이지만 얼굴엔 생기가 돈다. 

고등학교 송년회에선 60대에 들어선 자신들이 70~80대 선배 동문들의 ‘기쁨조’가 되어 노래와 춤으로 재롱을 떠는 순서가 있다며 셀폰 동영상을 틀어놓고 ‘열공’ 중이다. 

그런데 연습하는 그 노래 가락에 내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재롱이 아니라 선배님들에게 드리는 ‘격려사’란 생각이 들었다. 가사는 대개 이런 내용이다.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에 나이가 있나요/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눈물이 나네요/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어느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내 모습을 바라보면서/세월아 비켜라/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내 나이가 어때서?’란 이 뽕짝노래는 한국의 어느 TV드라마에서 나문희란 유명 원로배우가 부른 노래라고 한다. 

한마디로 나이가 좀 들었다고 감히 참견하거나 시비 걸지 말라는 노인들의 노골적인 ‘해방선언문’처럼 느껴진다.

송년은 기쁨보다는 슬픔 쪽이다. 

한해가 저물어 새해를 맞는 것이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 죽음과 이별 쪽으로 한해 더 다가섰다는 뜻이니 송년회는 결국 우울모드에 속한다.

그렇다고 기죽을 일은 아니다.

 늘어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밀고 나가는 것이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나이를 거꾸로 센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해가 갈수록 나이는 젊어지다가 0살이 되면 죽어서 조상에게 간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식으로 한 살 줄었다고 계산하고 우울모드를 희망모드로 바꿔야 송년회가 즐겁지 않겠는가?

성경에 등장하는 최장수 인간 무드셀라는 969년까지 살았지만 노아의 홍수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수명은 100년을 넘기가 힘들어졌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시편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에게 주어진 연수가 70이요, 잘하면 80”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잘하면 80이 아니라 실수하면 80이고 잘하면 100살을 넘는다. 

그러니까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요 잘하면 연장전까지 가기 때문에 자신 있게 송구영신을 맞이해야 한다.

 베르디는 오페라 '오셀로'를 80세에 작곡했고 '아베마리아'를 85세에 작곡했다. 

우리가 잘 아는 미켈란젤로는 85세에도 성 베드로 성당 공사 감독을 맡으며 그 유명한 ‘피에타’를 조각하기도 했다. 

조지 버나드 쇼는 92세 때 희곡을 쓰기도 했고 콘라드 아데나워는 87세 때 독일 재상이 되었다.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89세에도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운영했다.

이런 노인열전은 끝도 없이 많다. 

그러니까 요즘 80은 노인은 커녕 아직도 팔팔한 청춘이란 뜻이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I would be better to wear out to rust out)’란 말이 있다. 
잘하면 연장전을 거쳐 100세 시대가 도래하는 마당에 이왕이면 녹슬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는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하면 금방 할 일은 많아진다. 

한국에서 어느 교회 담임목사님은 은퇴한 후 그 교회 교회학교 교사로 부임(?)했다는 기사를 읽고 녹슬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는 인생의 모델이라고 느껴졌다. 

존경스러운 일이다.

선교사로 유명한 스탠리 존스 박사는 늙어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비결 6가지를 제시했다.
 
①은퇴하지 말라. 언제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라. 
②날마다 무엇이든 새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라. 
③누군가에 친절을 베풀라. 
④적극적이 되려고 노력하라. 
⑤날마다 주변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으라. 
⑥남은 물질과 정신적 유산을 하늘 창고에 쌓으라.

남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다 송년회다 광내고 때 빼는데 내 얼굴엔 주름살만 깊어지고 머리는 히말라야 산맥처럼 하얗게 변해 간다고 한탄 할 일은 아니다. 

세월은 흘러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선언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자. 

아프리카 식으로 새해엔 한 살을 빼고 더 젊게 살자.

연말연시 마땅히 가야할 송년회도 없다면 유튜브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검색한 후 목청을 높여 한번 따라 부르면 어떨까? 

아직도 사랑하며 살기에 딱 좋은 나이다.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