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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침 식사는 사과, 계란, 그리고 가끔은 오트밀이다. 

저녁은 대개 현미밥, 된장찌개에다 미역국, 고등어, 김치, 그리고 육고기 등이 섞여 나온다.
건강식이라고 아내가 챙겨주는 식단이다.

그런데 아들이 집에 오는 주말이 되면 ‘외식타임’ 이다. 

아들은 부모에게 밥 사주는 것을 즐긴다. 

중국, 타이, 월남, 이탈리안 음식은 아들이 없어도 찾아먹을 때가 많지만 아들은 내가 가보질 못한 곳, 예컨대 페루, 그리스, 브라질, 헝가리 식당 등을 찾아간다.

지난주엔 인도 남부식 식당으로 안내했다. 

인도식당은 많지만 특히 인도 남부 음식점은 흔치 않다고 했다. 

거기서 처음 맛본 ‘도싸(Dosa)’란 과자는 우리가 흔히 먹는 납작과자인 센베이를 부드럽게 말아 그 안에 삶은 감자를 넣어 만든 음식인데 내 입맛엔 딱이었다. 

외식의 즐거움, 그것도 가족들과의 외식은 이민생활의 활력소에 틀림없다.

외식을 하고 들어 올 때면 누가 말했다던가? 

그런 말이 생각이 난다. 

“인생이란게 뭐 별거요? 좋은 사람 만나서 맛난 음식 먹으며 즐겁게 웃고 시간 보내면 되는 거지 . . .” 인생에 외식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신앙생활에도 외식은 당연히 필요하다. 

성경, 기도, 찬송, 예배가 우리들의 ‘고정식단’이라면 가끔은 외식이나 별식도 있어야 활력이 넘칠 것이다.

교회마다 때를 따라 심령부흥회를 연다. 

훌륭한 외부 강사를 모셔다 말씀을 듣고 영적 도전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결단하게 되니 ‘영적 외식’인 셈이다. 

목사파, 장로파로 나뉘어 씩씩대던 교회가 부흥회가 끝나고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달라졌다면 그건 외식이 성공한 케이스다.

음악적 외식도 있어야 한다. 

한국의 유명한 송정미, 박종호 음악사들을 불러 찬양집회를 열면 그들의 찬양과 간증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을 받는다. 

‘CCM 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외식도 있다. 작곡가 백경환 목사님은 금년 기독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중 하나로 알려진 멘델스존의 ‘엘리야’ 전곡을 무대에 올렸다. 

미주 한인교계에선 처음 소개되는 일이라고 들었다. 

우리가 어딜가서 멘델스존의 엘리야를 듣겠는가? 

최고 품질의 외식메뉴가 떴는데도 안가면 누가 손해일까?

 지난해엔 월드미션대학교의 윤임상 교수가 지휘하는 라크마(LAKMA)가 월트 디즈니 홀에서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레퀴엠’을 공연했다. 

이건 또 얼마나 고가의 외식상이란 말인가? 

찬송가란 고정메뉴에서 벗어나 이같은 별식으로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크리스천 라이프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신앙생활의 외식 메뉴는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란 영화가 이번 달에 개봉된다. 

이집트 왕국에서 모세스와 람세스는 형제로 자라게 되는데 생지옥 같은 노예들의 삶에 분노하게 된 모세스는 스스로 신이라 믿는 제국의 왕 람세스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고, 결국 400년간 억압받던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고 자유를 찾아 이집트 탈출을 결심하게 되는데 과연 이 영화에서 모세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가 벌써 궁금하다. 

할리웃이 기독교 영화 제작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도 눈여겨보면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를 별미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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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때는 바야흐로 대강절이다. 

대강절 고정 외식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연극 ‘빈방 있습니까?’라고 할 수 있다. 

30년 역사를 가진 이 성극이 한국에선 이미 여러 곳에서 공연될 예정이란 뉴스를 읽었다. 

남가주에서도 몇 년 전까지 대강절 단골메뉴로 공연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그런데 지난해에도, 금년에도 깜깜 무소식이다. 

아마 후원자도 없고 교회에 와서 공연해 달라는 요청도 없으니 공연팀이 스스로 풀이 죽어 해산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고정식단에만 매달려 외식의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르는 옹졸한 개체교회와 성도들의 ‘문화빈혈증’ 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교회 갔다 오는 것 말고는 한국 TV연속극 보는 것을 이민생활의 처음과 끝인 듯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무수히 많다. 

그걸 문화생활의 전부라고 자랑하지는 말자. 

대강절을 맞이했는데도 ‘빈방 있습니까?’란 연극도 공연되지 못하는 기독교 문화 불모지를 서글퍼하자. 

기독교 문화의 다양한 외식 메뉴가 개발되는 것도 사실은 선교 다변화 전략의 일환임을 깨닫는 안목을 키워가야 한다.

‘빈 방’이 사라졌다면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어디에 모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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