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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 승무원으로 오랫동안 일해 온 일본인 미즈키 아키코가 ‘일등석 사람들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란 책을 썼다. 

직접 읽은 적은 없지만 책 내용을 요약하여 누가 내게 보냈다.
일등석 사람들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고? 

요즘 아이패드나 삼성 ‘갤럭시 노트’만 있으면 글을 쓰는데 펜은 필요하지 않다.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들이 펜을 빌리지 않는 이유는 항상 자신의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비행기의 일등석이라고 한다. 

그럴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일등석을 평생 한 번도 타본 적이 없고 남은 인생 중에도 일등석을 타볼 가능성은 100% 없다. 

우선 입이 쩍 벌어지는 비싼 가격 때문에 일등석 사람들은 돈 걱정 따위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별나라 사람들이겠거니 믿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 스튜어디스는 일등석 손님에게 봉사하면서 그들만의 행동과 습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걸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그 습관과 행동은 어떤 것일까?

그 첫째가 일등석 사람들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관찰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그러기에 반드시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닌다는 것. 
그러면서 메모는 최강의 성공 도구라는 것, 또 기록하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고 아이디어를 동결 건조시켜 보존해준다고 덧붙이고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습관 하나가 메모하는 습관이라고 하니 아하. .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언론들이 ‘수첩공주’란 닉네임을 붙여준 것도 성공과 메모와의 상관관계 때문인가? 

늘 메모하고 노트 하는 습관이 대통령이란 성공의 길로 안내했다고 봐야 하는가? 
또 있다. 

북한의 김정은 주변에 몰려 있는 권력실세들도 그 뚱뚱한 몸집을 어렵사리 지탱해 가며 수첩을 들고 적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여러 번 본적이 있다. 

독재자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도 메모습관은 필수란 말이 된다.
나는 기사를 쓰는 기자다. 

그렇다면 당연히 필기도구는 몸에 지니고 다녀야 마땅하다. 

그런데 내 몸에 필기구를 소지하고 다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흔한 기자수첩이란 것도 없다. 

식당에서 사람을 만나면 웨이추레스에게 볼펜을 빌린다. 

식탁위에 놓인 하얀 냅킨에 메모하는 때가 많다. 

숟가락을 놓기 위해 밑에 까는 백지 플레이스매트에다 메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나의 말상대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날 뭘로 봤겠는가?

아마도 나는 내 머리를 너무 과신하며 살았나 보다. 

웬만한 것은 기억 속에 저장을 하고 나중에 그런대로 리와인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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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물었다. 

다저스의 캐쳐 이름이 뭐지? 

얼굴은 금방 떠오르는데 이름은 깜깜하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한참 후에야 AJ 엘리스란 이름이 겨우 생각이 났다. 

내 머릿속의 메모리 셀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더욱 수첩이 필요하거늘 나이와 함께 시건방도 늘어나는지라 메모하는 버릇을 귀찮게 접어두며 살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기자다.

메모하기를 싫어하는 기자, 필기구가 없어 툭하면 옆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허둥대고 있는 기자, 그런 자가 어떻게 신뢰할 만 하고 능력 있는 기자로 보여 질 수 있을까?

그러니 일등석 타보기는 영 물 건너 간 인생이다.

‘수첩기자’는 실패했다고 치고 그럼 이 참에 ‘수첩목사’로 변신해 볼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 내 필기구를 꺼내 노트하고, 간절한 기도문이 생각났을 때 노트하고, 깨달음과 영감을 얻었을 때 노트하고, 침묵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메모하고, 그런 수첩 목사로 변해간다면 나도 ‘성공목사’ 반열에 설 수는 있을까?

성공목사란 다 부질없는 환상이라고 쳐도 메모하는 습관, 좀 더 진화하여 하루의 여정을 일기란 기록으로 남겨 놓고 살아가는 습관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꽃보다 누나’의 배우 김자옥 씨가 나이에 비해 일찍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인생이란 결국 ‘꽃보다 이별’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나를 되돌아보며 노트를 남기고, 더 발전하여 일기를 남기고, 더 성숙해져 유언을 남기고, 언젠가 다가 설 이별의 때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내 인생의 역사를 기록해 보자고 작심해 보자. 

그럼 조금은 더 감사가 넘치고 조금은 더 겸손해 질 것만 같다.

삼등석처럼 인생은 평범할 지라도 일등석 인생의 성공습관정도는 길들이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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