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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이 쓰러졌다. 

지난 15일 열린 미 프로농구(NBA) 파이날 5차전에서 지난 2년 연속 NBA 챔피언자리를 지켜오던 마이애미 히트(Heat)가 샌안토니오 스퍼스(Spurs)에게 패배하면서 챔피언이 무너진 것이다.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이나 스포츠 전문가들은 모두 마이애미의 승리를 예견했다고 하는데 모두 ‘꽝’이 되고 말았다. 

홈경기로 벌어진 5차전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는 파이날 MVP를 차지한 카위 레너드였지만 그래도 슈팅 가드 마누 지노빌리의 거침없는 3점 슛이 정신없이 작렬하면서 마이애미 3인방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를 초토화 시켜 버렸다.

물론 스퍼스의 3인방 팀 덩컨, 토니 파커, 지노빌리의 노련한 플레이가 승리를 견인했지만 그래도 지노빌리는 유로리그 우승, NBA 우승,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경험한 세계 유일의 선수이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겐 영원한 판타지 스타다. 

금년 36세의 노장선수인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 아르헨티나에선 아마 축제가 벌어지고 야단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같은 날 리우의 그 전설적인 마라카낭 축구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2대 1로 꺾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아르헨티나에 첫 골을 안긴 것은 ‘축구천재,’ ‘골잽이’ 리오넬 메시였다. 

이번 월드컵 축구를 빛낼 최고의 스타를 꼽는 데는 메시를 빼놓지 않는다.

최근 수년간 세계축구의 양대 산맥과 같은 존재는 메시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들은 유럽축구 최대의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엔 메시가, 레알 마드리드엔 호날두가 소속되어 있어 영원한 라이벌 관계다. 

그런데 이날 메시가 먼저 선취골을 뽑아내면서 이번 월드컵에서 남미의 자존심을 살리고 삼바축구의 위력을 과시하겠다는 각오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를 앞세워 월드컵을 차지한 후 28년 만에 다시 한번 그 정상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환생’이라는 메시에게 절대적 기대를 걸고 있던 마당에 통쾌하게 한 골을 넣어 첫 승리를 국민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누 지노빌리가 NBA 챔피언의 영광을,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에서 승전고의 풍악을 울리는 바람에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아마도 축제의 큰 마당이 되었을 법 하다.

포클랜드란 섬을 두고 영국과 맞장 뜨겠다고 덤벼들었다가 비참하게 전쟁에서 패배한 후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던 아르헨티나는 여북했으면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이 ‘에비타’란 뮤지칼을 통해 ‘돈 크라이 포 미 알젠티나(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라고 노래한 사연이 있었을까?

그래도 지난해엔 ‘국경 없는 세계 대통령’이라고 흔히 말하는 로마 교황이 그 나라에서 탄생하지 않았는가?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출신의 교황이요, 남반구에서 탄생한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포크랜드 전쟁 패배와 가난으로 구겨진 국가 자존심이 서서히 살아나는 마당에 이번 월드컵까지 들어 올릴 수 있다면 다시 축구로 국가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2차례나 월드컵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거늘 그게 전혀 터무니없는 환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챔피언이 어디 존재할 수 있으랴! 

승리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일이 천하에서 가장 영광스러워 보여도 그 영광이 영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도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날이 오고 4년 전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인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은 지난주 ‘오렌지 군단’ 네델란드에게 5대1로 무참히 패배하면서 ‘국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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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이탈리아에게 깨지면서 축구 종주국의 체면을 구겼다.

전 세계 32강 월드컵 본선 참가국들이 우승의 환상에 빠져서 이를 악물고 갈팡질팡 굴러가는 축구공 하나에 목매는 꼴을 보면 참으로 부질없는 광기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월드컵 반대시위를 벌이던 브라질 국민들의 저항에 공감 가는 부분도 있다.

문득 월드컵에 전 세계가 정신 팔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알젠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가 아니라 “세상사람 여러분, 월드컵을 위해 울지 말아요”라고 노래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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