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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목사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요즘과 같이 위기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는 시대에 위기관리의 리더십은 지도자의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위기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도자들의 실패한 모습들로 인해 온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모든 위기는 그 과정에서 지난날 겪어보지 못한 낯 설은 형태로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러기에 위기 과정에서 많은 리더들이 실추되고 낙마되기도 한다.

목회를 해오면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닫게 되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다. 

첫째는 인생에는 얼마나 위기와 시험이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다양한 위기와 시험이 우리 삶의 면전을 때리는지 모른다. 

위기가 올 때 무엇보다도 경험과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 자신도 목회를 해 오면서 여러 형태의 위기와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목회 초년병 시절에는 그 위기와 시험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러한 시간에는 잠을 설치고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기도 하였다. 

이러다가 목회의 영원한 실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깨달은 두 번째의 진리가 있었다. 

그것은 위기와 시험을 잘 극복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진리였다. 

시험은 왕왕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기회이었다. 

그것을 어느 날 체험하고 경험하고 나니까 시험이 와도 이제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찬 파도가 덮쳐도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파도타기 하는 지혜가 생겨났다. 

그러고 나니 위기관리에 대한 새로운 안목도 주어졌다. 

그 위기를 극복한 임상적인 체험 때문에 몇 권의 책도 출판하였다. 

부족한 나의 책을 읽고 목사님들이 세미나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위기를 통과하는 목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경험했던 위기와 고난을 경청하며 그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총을 확신하기도 한다.

위기 극복의 리더십 중의 한 요소는 탄력적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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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시에는 리더가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큰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들에게는 직관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직관이란 한마디로 날카롭고 신속한 통찰력이다. 

직관적인 리더는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벼랑 끝에 서 있음을 깨닫고 신속히 대처해 나가는 사람이다. 

날카로운 직관을 가진 리더들은 한마디 리더십 상황을 읽어내는 눈이 있다. 

이러한 직관적인 리더십은 현장에 오래 머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다. 

또 직관적인 리더들은 위기가 오면 그 현장 상황을 떠나는 법이 없다. 

그 상황에 머물면서 패닉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솔직하게 상황에 대해 공개하고 주변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테러에 뉴욕 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는 하루 종일 수습현장과 수습 본부에 머물면서 쉴 새 없이 시민들과 커뮤케이션을 나누었다. 

그로 인해 줄리아니는 위기의 리더십이 그 상황에서 한층 더 돋보였다.

요즘처럼 위기가 일상화되는 시대 속에서 막연히 책상에 앉아 탁상 공론하는 리더들은 진정한 위기의 리더십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관료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현장 사역, 현장 선교 사역, 현장 교회 사역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이 당회나 운영 위원회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뜬 구름 잡는 의견을 내 놓을 때가 많다. 

그러나 몸으로 때우면서 교회 사역에 헌신하는 분들이 내리는 경험과 판단은 교회를 살리는 지혜로운 조언이 되기도 한다.

교회란 매우 가변적인 상황들이 날마다 교차되어 일어나는 곳이다. 

너무 원칙을 고집하면 교회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너무 탄력성만을 고집해도 교회가 무분별해진다. 

원칙과 탄력성의 적당한 긴장이 필요한 곳이 교회이다. 
<아틀란타연합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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