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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모님은 현재 양로원에 누워계신다. 
뇌졸중으로 몸의 일부가 마비가 된 상태다. 

그래서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때는 자식들을 알라보는 눈치고 어느 때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눈을 감으신다. 

음식을 삼킬수 없어 복부에 튜브를 꽂고 음식물을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의사 말로는 더 강도 높은 스트록이 3달 안에 다시 올 확률은 50%, 그리고 6개월 안에는 100%라고 말했다. 

그때는 숨은 쉬어도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항상 비상 대기하라는 식으로 말한다. 

인명은 재천이라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거늘 의사가 뭐라 한들 그게 하나님 허가 없이 사람 맘대로 수명이 결정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비상대기가 6개월이 아니고 6년이 될 수 도 있고 짧게는 내일 모레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란 전제를 깔아야 한다.

사실 자식들은 의식이 없고 몸만 살아 있을 경우 당사자의 육체적 고통, 그리고 아무 의미 없는 생존은 오히려 생명의 존엄을 깎아내리고 가족들을 지치게 한다는 생각 때문에 호스피스를 생각도 해봤지만 가족들의 의견이 만장일치를 보지 못해 그냥 양로원에 모시기로 했다.

그래서 근처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번갈아 드나들고 돌봐주는 사람까지 파트타임으로 불러서 하루에 몇 시간을 옆에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장모님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런 몸으로 일주일에 2번씩 투석을 받으러 차에 실려 양로원 밖으로 출장을 가야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어느 때는 제발 하나님 품으로 나를 돌아가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 
누더기 같은 육체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다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물거리는 장모님의 정신을 그런대로 회복시켜 주는 묘약이 등장했다.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막내아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만 들으면 살며시 눈을 뜨고 그 노래를 감상하는 눈치다. 

며칠 전 임종이 가까웠다고 통보를 하자 가족들이 서울, 사우스 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등지에서 가족들이 모였다. 

그 때 의식이 없는 듯 하다가도 막내 아들이 병실에서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를 신나게 부르면 그때는 정신이 드는 것처럼 애써 눈을 뜨거나 얼굴에 살며시 미소까지 생기는 게 아닌가? 
고운봉의 ‘선창’이란 이 유행가는 장모님의 젊은시절 18번으로 자식들은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 깨어나시라고 막내 아들은 그 노래를 수십번 불러댔다. 

유성기 판처럼 그 노래를 반복하던 아들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내 눈에서도 마찬가지다.

금년 86세의 노인. . . 
남편과 17년 전 사별하고 혼자 이 미국 땅에 살면서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아 오셨을까? 

노인 아파트에 혼자 사시다 자꾸 거동이 불편해지자 둘째 딸 집인 우리 집으로 오셔서 함께 살면서 낮엔 노인센터에 나가셨다. 

창피하게 무슨 지팡이냐고 뿌리치던 분이 지팡이가 아니면 거동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것도 부족하니까 세 발 달린 카트를 밀고 다니는 신세가 되셨다. 

노인센터에 실려 가서 가끔 빙고를 하고 점심을 먹으며 한나절을 보낸 뒤에 집에 와서 TV를 보시다 주무시고 일주일에 두 번은 투석을 받기 위해 먼 길을 왕래해야 했다. 

도무지 우리 집에 모실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결국은 양로원으로 가셨다.

누가 부축해 주지 않으면 화장실에 갈수도 없는 형편에 이르자 아내는 울면서 양로원으로 보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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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양로원에 누워계실 때 TV 모니터를 따로 사다가 한국 복음방송 CGN-TV를 고정시켜 드렸다. 
방송을 통해 찬양도 듣고 설교 말씀도 들으시라고 . . .

그런데 양로원에 계신지 1년이 조금 지난 금년 4월에 스토록이 와서 가족들이 급하게 모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막내아들은 간절히 기도하면서 젊을 때 어머니의 18번 유행가를 열창해 드린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돌아가실 어머니의 일생을 추억하며 아마 노래를 부르다 말고 하염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이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어머니들은 대개 자식들을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해 온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도 없다. 

갖은 고생을 하며 외우고 또 외워서 미국 시민권 시험에 합격하여 마침내 웰페어, 메디케어 받고 있으니 자식들에게 재정적 신세를 크게 지지 않고는 있지만 말이 안통하고 운전조차 할 수 없어 살아가는 게 사실은 ‘창살 없는 감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덜렁 혼자 남아 몸이 늙어지면 인생은 더욱 외롭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수족이 불편하여 양로원에 누워 있게 되면 아마도 가슴에서 터져나올 것 같은 노래 가락은 영낙없이 “울려고 내가 여기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가 아니겠는가?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막내아들은 이 노래를 동영상으로 취입(?)하여 아이폰으로 보내주면 아내는 전화를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 침대 옆에서 수십번 씩 재생하여 그 노래를 들려준다.

 셀폰에서 흘러나오는 막내아들의 희미한 노래 소리를 들으며 어렵게 눈을 떠서 그 노래하는 아들의 모습을 응시하는 장모님의 누워 있는 자리가 머지않아 내가 누워있을 자리라고 생각하면 나를 위해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불러줄 나의 아들은 한국 유행가는커녕 영어밖에 모르는 ‘모노링궐’이니까 내가 늙어 그런 노래를 기대하기는 영 글러버렸다.

무슨 큰 영화를 보겠다고 이 미국 땅에 자식들 따라와서 외롭게 양로원에 얹혀살다가 어느 날 이 세상을 마감하는 수많은 한인사회 어머니들의 모습이 곧 우리 장모님의 모습이다. 

교회 열심히 섬기고 자식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별로 투자한 것도 없고 내놓고 즐겨보지도 못한 채 그저 자식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감사하며 살아오시던 우리들의 어머니. . . 

그 어머니들이 점점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사실 한인 이민 가정의 오늘을 건강하게 다져 온 것은 어머니들의 기도 때문이다. 

어머니들의 헌신과 희생 때문에 오늘의 한인가정들이 있고 웰페어를 타면 우선 십일조부터 챙기는 그 어머니들의 신앙제일주의 때문에 한인교회들이 은혜가운데 성장을 이루어 온 것이다.

 오는 11일은 어머니의 날이다. 젖과 꿀은 커녕 거칠고 외로운 이민광야에 “울려고 내가 왔던가”라고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어머니를 찾아가자. 

특별히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들에게 찾아가서 나지막이 속삭여 드리자.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바로 어머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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