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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Holocaust)란 원래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 학살하거나 불태우는 잔인한 행위를 가르키는 말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변하게 되었다.

나는 몇 년 전 보스톤 시청 앞에 있는 ‘보스톤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많은 것을 느낀 적이 있다. 

5개의 거대한 유리 조형물을 지나다보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곳도 있다. 

유대인 6백만 명을 죽인 독가스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주변 검은 대리석에는 학살의 생생한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고 기념물 건립에 기여한 단체와 사람들의 이름도 적혀있다.

이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보스톤 뿐만 아니라 수도 워싱턴 DC에도 있고 볼티모어에도 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LA에도 있다. 

LA 한인타운에서 베벌리 블러버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하일랜드 애비뉴를 지나 왼쪽으로 ‘팬 퍼시픽’ 공원이 나오고 그 공원 안에 LA 홀로코스트 박물관(LA Museum of Holocaust)이 서 있다.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학살이 참으로 비참한 범죄이긴 했어도 지금의 이스라엘 수도인 텔아비브, 혹은 예루살렘 어느 공원에 세워놓는 것은 몰라도 구지 미국이란 나라 이곳저곳에 저런 기념물이 서 있을 이유가 있는가?

물론 미국의 유대인 파워란게 대단한 것이긴 해도 우리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요, 히틀러와 한편이 되어 범죄에 동조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처럼 속좁고 철없는 사람들의 미개한 사고방식이 바로 글렌데일에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반대하는 일본 극우 세력들과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그게 발생한 유럽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초월하고 히틀러와 유대인과의 철천지 원한감정을 떠나서 모든 종족, 모든 국가들이 인류역사에 다시 재발되어서는 안되는 반인륜적 범죄라고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곳곳에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세워질 때 어느 누가 반대하고 나서는 철면피가 있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나 외교 분쟁의 잇슈가 아니라 이제는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잇슈로 부각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여 도무지 저지를 수 없는 범죄로 규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두 당사자 국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세계인들이 전쟁터에서 일어난 이 범죄로 공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사실 중국인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위안부로 징집되었다고 한다. 
최근 발굴된 증언에 따르면 한 위안부 소녀가 하루에 250여명을 상대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어쩌면 홀로코스트와 비교해서 더 잔인한 범죄가 전쟁터에서 벌어진 게 아닌가?

그럼 홀로코스트 기념비는 세워져도 되고 위안부 기림비는 안된단 말인가?

아니 이같은 흉악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소원하는 모든 나라에서, 미국 뿐 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공원에 세워진들 어떠랴! 

그 뜻이 평화를 사랑하는 후세에 전달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글렌데일 시의회는 위안부 기림비를 ‘평화의 소녀상’이란 이름으로 자기네들 시립 중앙 도서관 앞에 세워 놓은 것이다. 

글렌데일은 얼마나 용기있는 도시요, 시 의원들의 역사안목은 또 얼마나 선구자적인가?

글렌데일은 2010년 인구 센서스로 따지면 19만 인구를 가진 LA 카운티에서는 3번째, 미 전국적으로는 22번째 큰 도시로서 ‘알메니안들의 베벌리 힐스’라고 알려진 미국 내 알메니안 최대 밀집 도시다. 

알메니안이 다수 거주하지만 사실 한인이나 아시안도 많이 살고 있는 다인종 교육도시다.
그런 글렌데일에서 미 서부에서는 최초로, 그것도 지방정부 공공부지에 소녀상이 들어선 것은 얼마나 뜻 깊은 일인가?

그런데 이 소녀상이 계속 일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아니 소녀상을 철거해 없애자는 그들의 집요한 공작이 계속되고 심지어 백악관에 청원사이트를 만들어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글렌데일 시원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여 회유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미주지역에서 각종 언론 홍보 전략을 통해 소녀상 없애기 작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연방하원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앞장선 민주당 소속 친한파 마이크 혼다 의원이 있다.

 일본계 미국인시민연맹(JACL) 샌퍼낸도밸리 지부와 ‘니케이 시민 권리 보상 운동’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일깨우기 위해 세운 글렌데일 소녀상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그들의 치우침이 없는 시원한 정의의 목소리에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소녀상 철거 백악관 서명운동에 동참한 일본계 서명자가 10만 명에 이른다고 전해지자 한인커뮤니티도 이에 맞서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서명운동이 활발해 지고 있다. 

한인교계도 구경만 할 일이 아니라 좀 더 조직적으로 동참하여 소녀상을 구해야 마땅하다.

일본군 위안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LA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새겨진 ‘홀로코스트는 결코 잊혀 져서는 안된다’는 선언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능멸한 위안부 사건도 잊혀 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평화의 소녀상은 글렌데일 바로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서 있어야 옳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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